하정임 시인 / 황사黃砂 외 1편
하정임 시인 / 황사黃砂
봄은 눈에 먼지처럼 아픈 황사였다 햇살이 공중에 금빛 머리카락 그리며 내렸다 아이들은 숨겨둔 일기장을 펼치듯 황사 속에서도 운동장을 일으켜 세우며 은륜의 다리를 굴렀다 어디쯤에서 잃어버린 가족 사항이 의미없이 떠돌다 내려앉는 빵봉지 위로 적혀 나갔다
해가 지면 은행나무는 붉은 가로등 불빛에 교문까지 마른 손가락을 뻗었다 나무의 아직 입지 못한 푸르고 환한 옷 모든 결핍은 꿈을 낳는 것이므로 보살피지 않아도 싹을 틔우기 위한 아이들, 나무는 몸 속 수액을 데웠다
숨겨둔 일기장 속 비밀은 늘 결핍이지만 황사는 봄의 어디쯤에서 반드시 그칠 것이었다 아이들은 결핍 뒤에서 흘리고 온 꿈이 보이지 않는 황사 속 선생님의 분필같이 쉽게 부러질까 수직의 힘이 무서웠다
하정임 시인 / 엄마와 고양이는 오늘도
햇빛에 탄 내 속눈썹이 떨어지면 엄마가 달려와요 발랄하기 위해 태어났어요, 를 외치며 장미는 밤새도록 시들어가고 시든 장미를 따먹고 배가 불러오면 엄마가 입덧을 하고 있어요 자손이 번창하면 고양이들은 수염을 연마하기 위해 정원을 탈출하고 쥐약을 놓던 엄마의 관절에서 서른 다섯번 음표들이 튀어오르는데,
뒤통수에 대고 하는 고백은 살인자의 것, 멋진 수염을 빛내며 고양이들이 쥐약을 먹고 죽어야요 잔인한 것, 할만큼 했어요, 엄마? 엄마가 떨어진 속눈썹을 붙이고 볼일 다 봤다는 듯 화장을 지워요 햇빛은 창가에서 비치는데 얼룩말을 닮은 엄마의 얼굴은 개같이 슬프고,
정원에서 고양이들의 무덤이 쑥쑥 솟아올라요 시든 장미는 고양이의 웃음을 닮아 자꾸 붉어지고, 장미의 나라에서 엄마의 무덤을 뚫고 나온 내 최초의 종족은 고양이, 살인자의 등을 할퀼 준비는 언제나 되어 있어요 이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오늘도 내일도 그래요 한번 해 보자구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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