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문인선 시인 / 속없는 남자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3. 3. 24. 05:00

문인선 시인 / 속없는 남자

 

 

푸른 잎 팔랑거릴 때는 윤기도 났다

 

무슨 조화였을까

갈색 산마루로 오르는 생의 산등선에서 무얼 그리 숨길 게 있었는지

남자는 자꾸 배가 나오고 있었다

 

푸른 잎의 시절로 돌아가라 돌아가라

 

어느 날

병원엘 들러 속을 다 덜어내고 왔다

 

그것들이 남자의 몸을 지탱하는 바지랑대였을까

이제 남자는

푸른 잎도 갈색 잎도 아닌 그림자가 되었다

 

철없는 아내는

허공에 홀로 떠 있는 하현달처럼 붉게 울지도

추위에 떠는 이월 매화꽃처럼 떨 수도 없었다

 

속없는 남자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문인선 시인 / 어머니 생각

 

 

어제 우포 늪에서 수제비 뜨던 제비.

오늘 시댁 처마 밑 둥지에서.

입 벌리고 있는 새끼 입에 넣어 주네요.

 

한밤도 마다 않고 어머니

막내딸이 먹고 싶어 한다고.

장작불 지펴 수제비 끊이셨지요.

 

어머니 뱃속에는 암 덩이 채우고 계신 줄도 모르고

 

나는 내 좋아 하는 수제비로

배 속 채웠지요.

 

어머니

수제비 처럼 뚝 뚝 끊어질 수 없는 그리움.

 

콩죽이 끓듯 뿌그르르 뿌그르르

자꾸만 부풀어 올라요.

 

오월의 하늘 바라

 

이슬에 젖은 가슴.

 

카네이션 한아름 안고 불러 봅니다,

 

어머니..... ?

 

 


 

문인선 시인

경남 하동 출생. 시낭송가, 문학평론가, 1997년 《시대문학》 등단. 경성대학교 평생교육원시창작, 낭송아카데미 주임교수. 경성대 국문학과 외래교수. 한국문인협회중앙위원, 국제펜회원 등. 시집 『사랑 하나 배달되어오다』 『천리향』 『그래도 우담바라는 핀다』 『날개 돋다』 『애인이 생겼다』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