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일 시인 / 비의 마중 외 1편
김중일 시인 / 비의 마중
어린아이가 무지개 우산을 쓰고 맞은편에서 동동 떠내려오듯 오고 있다
네가 비켜서는 방향으로 아이도 비켜서기를 여러 번, 가만히
멈춰 선 아이의 우산은 비의 무릎 같다 네 앞에 쪼그려 앉아 마치 너를 어린아이처럼 내려다보는 키가 큰 비의 한쪽 무릎 같다
너를 마중 온 비
한쪽 무릎을 꿇고, 우산도 안 쓴 너의 이마를 매만지는 비의 젖은 손가락.
너는 아이의 무지개 우산 위의 공중에 목례를 하고 서둘러 마중 간다
급히 챙긴 하나 남은 우산을 쓰고 갈 생각을 미처 못하고,
기다리다 울지 마라, 울다가 가지 마라 기도하며 죽은 딸을 마중 간다
그동안 잃어버린 우산들을, 그렇게 모두 다 주고 돌아왔다
김중일 시인 / 다녀가다
차갑다 옆자리가 아스파라거스 새파란 누가 다녀갔다 재채기처럼 순식간에 분명히. 왔다 일 년을 걷고 다시 그 절반을 걸어서 앉았다 갔다 창 문을 내다본 사이. 이제 같이 살지 않겠냐고. 찾아왔다 죽은 지 일 년 반 동안 묻고 물어 걷고 걸어. 몰래 다녀갔다 죽기 살기로 찾아와 놓고 한번 떼써 보지도 않고, 이제 같이 살지 않겠냐며. 높이 저 높이 던져 올린 토마토가 떨어져 막 정오를 무심히 지나치는 시곗바늘에 꽂혔다. 자전거에 앉아 고개 드니. 서서히 미끄러져 내려온다. 방금 전 일어난 안장의 체온이 천천히 식어가는 속도로 분침에 말끔히 잘린 하루해의 절반이. 그 사이 다녀갔다 누가 감쪽같이 빈 밥상만 덩그러니 남겨놓고 주인 없는 생일날 밥상 아래로 갔다 식은 미역국이 얼음처럼 얼도록. 내 무릎에 앉았던 아주 작은 아이가 아이가 타고 온 공기가 땅 위에서 죽듯 새가 결국. 구름 속에 묻히듯 나무가 마지막에. 그냥 가지 않았다. 스쳐가듯 다녀 갔다. 나보다 조금 먼저 갔다 작년에 일교차 사이로 다녀갔다. 고인의 방 안팎의 밤낮 사이로. 무심결에 고개 돌리다가 마주쳤다 아스파라거스 새파란 행운목 한 토막에 걸터앉은 꽃, 번번이 몰래 다녀가려던 꽃을 만났다 꽃의 실수로. 기왕 만난 거꽃피듯 잠깐씩 영원히 같이 살지 않겠냐는 물음, 내 기억 속에서만 헤아릴 수 없던 꽃이 눈앞에서 마음만이 몇십 년 쯤 앞선다. 여기 없는 몸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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