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완 시인 / 나를 먹어 외 1편
조병완 시인 / 나를 먹어
사람들을 만나고 살면 나는 살이 찐다. 사람들의 말, 행동, 눈빛 마음을 훔쳐 먹어서 찌는 살 사람들을 훔쳐 먹어 키득키득 달라붙는 군살 도둑보다 풍요로운 살
홀로 있을 때는 살이 찌지 않는다 나를 뜯어먹고 갉아먹고 나를 놀려먹고 끼룩끼룩 아픈 배 머슴보다 빈곤한 마음
얼마나 나를 뜯어먹어야 얼마나 가지고 놀아야 얼마나 갉아먹어야 내가 없어질까 없어진 내게 웃으며 따뜻한 손을 내밀 수 있을까
-시집 <빈말과 헛말 사이에 강이 흐,>
조병완 시인 / 양말을 버리는 즐거움
룰루랄라 즐거이 양말을 버린다
걸어다닌 만큼 닳아진 양말 몸의 무게가 실린 만큼 얇아진 두께 뒤꿈치를 비치게 하고 발가락이 나올 구멍을 순순히 허락한다
세상과 만나면서 얇아지고 세상과 부대끼며 탄력이 빠진 양말은 낙관적이다
해진 양말을 쓰레기통에 던지면 훅 번지는 쾌감 양말은 나를 배반하지 않으므로 즐거이 양말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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