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이길상 시인 / 오월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3. 4. 8. 06:00

이길상 시인 / 오월

 

 

기억해! 기억해!

그 말이 너무 아픈 오월

 

독재정권이 무너진다면

광주에 참 평화가 찾아온다면

햇살 한 점 없어도

좋겠다고 했던 그 말

 

“미얀마 시위 확산!”

쓰러져서도 그들은 피켓을 들었다

인터넷으로만 확인하는 그들의 소식

자꾸 가늘어지는 내 손목

부끄럽기만 하다

 

작은 새의 울음

아무렇지 않아 더욱 미안한 오월

 

푸른 하늘 바라보는 것조차

한 줄기 햇살조차 아릿아릿한

그 오월

 

 


 

 

이길상 시인 / 철로변

역사엔 톱밥난로가 홀로 어둠을 끌어당기고 있다

저탄장 탄가루의 마른 기침소리가 들리고

아침을 여는 길은 객지를 떠돈다

막장에 들어가는 반딧불들, 날개를 떨구면

검은 산엔 절망의 삽날이 꽂힐 뿐이다

등록금 낼 때쯤이면 아이들은 학교가 불 꺼진 빈집 같다

학교에 가지 않은 몇 아이들은 울먹이는 강이 된다

잠 못 이루며 출렁이는 삶이 거품으로 올라올 때

그 빈 공간 메우자고 떠난 아이,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아이 소식 궁금할 때마다 강물은 말이 없고

고요와 적막에 남은 논밭마저 드러눕는다

갈대처럼 함께 모여 살던 이웃들은 흔들리고 있는가

갈기 선 바람이 불자 희망의 불이 꺼진

길 아래 집들은 웅크리고

떡잎 같던 시간이 뿌리를 거둔다

시린 눈발에 하늘도 허기진 달을 내건다

달처럼 텅텅 울리는 마음은 철로로 놓여 먼 길 떠났을까

거죽만 남은 풍경은 주저앉아 빈 밭을 키우고

세간은 더 야위어 간다

장에 가신 아버지의 좌판에 햇살 가득 찰 날이 올까

아버지가 오실 길에 차단기가 내려가 있다

겨울 그놈의 겨울이 또 눈과 바람을 데리고

무쇠처럼 달려오고 있다

 

<200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이길상 시인

1972년 전주 출생. 원광대학교 국문과 졸업,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200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사이버 신춘문예 시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