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심 시인 / 채련곡采蓮曲
최형심 시인 / 채련곡采蓮曲 -허난설헌 풍으로
산앵두 붉은 손끝 물에 어리네. 연잎선 부채질하는 저편의 님 그림자 꽃잎에 포개지네. 물 위에 푸른 귀를 가만 대고 수련잎이 님의 목소리 엿듣고 있는 하오下午, 바람이 수련의 분홍빛 볼을 꼬집으며 희롱할 제, 쪽빛 반푼사로 물빛을 누빈 구름 한 채 덮고 이 몸은 흔들리네. 수루水樓에 걸린 하늘 한 폭 끊어다 주름 잡으면 청동빛 잎들 사이로 공중이 번지네. 이마에 찬물을 얹고 물 아래를 걸어가는 간밤의 빗발을 생각하네. 나비 한 마리 물 젖은 공중에서 날아오르고, 님의 소맷자락 그늘에 든 연잎들 서로 스미네, 서로 번지네. 실바람 이음수로 수놓은 이편과 저편, 꽃밥에 배부른 청노새가 님 태우고 수양버들 사이로 사라지네. 수련잎에 내려앉은 서러움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라앉고 있는데, 꽃이 되지도 못하고 이 몸은 목선木船에 홀로 앉아 열꽃 번지네.
웹진 『님Nim』 2023년 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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