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아 시인 / 화려한 외출
허진아 시인 / 화려한 외출
젊음이 번쩍이는 식당, 별개의 종족처럼 노인이 자장면을 먹네 늙은 심장과 떨고 있는 손, 면발을 집는 모습이 얼마나 위대한가 처량한가
창에 비친 낯설고 익숙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한다는 듯 씹고 있는 저―거룩한 주름들
한때 몸을 움직이던 신념이 오기였을까 종일 하는 일이란— 징징대는 몸, 이쪽 몸으로 저쪽 몸을 달래는 것 온몸이 심장인 듯 달아날수록 조여오는 고통
몸이 소리친다─너는 나로 행복했으니 이제 나를 돌보라고
사과나무 아래 사랑과 사과 같은 자식이 있겠지만 누구도 대 신할 수 없는 것 눈을 떠도 시작되는 고통, 그러나 어쩌랴 오래 살았다는 증거니―묵묵히 견딜 뿐
너무 짧은 시간이었나 빈 그릇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노인, 창밖에 로켓배송 택배가 지나가고......
입을 닦고 흡족한 듯 돌아보는, 검버섯이 환한 오후─식욕이 언제까지 그를 위로할까
-시집 『피의 현상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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