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허진아 시인 / 화려한 외출

파스칼바이런 2023. 4. 11. 05:00

허진아 시인 / 화려한 외출

 

 

 젊음이 번쩍이는 식당, 별개의 종족처럼 노인이 자장면을 먹네 늙은 심장과 떨고 있는 손, 면발을 집는 모습이 얼마나 위대한가 처량한가

 

 창에 비친 낯설고 익숙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한다는 듯 씹고 있는 저―거룩한 주름들

 

 한때 몸을 움직이던 신념이 오기였을까 종일 하는 일이란— 징징대는 몸, 이쪽 몸으로 저쪽 몸을 달래는 것 온몸이 심장인 듯 달아날수록 조여오는 고통

 

 몸이 소리친다─너는 나로 행복했으니 이제 나를 돌보라고

 

 사과나무 아래 사랑과 사과 같은 자식이 있겠지만 누구도 대 신할 수 없는 것 눈을 떠도 시작되는 고통, 그러나 어쩌랴 오래 살았다는 증거니―묵묵히 견딜 뿐

 

 너무 짧은 시간이었나 빈 그릇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노인,

창밖에 로켓배송 택배가 지나가고......

 

 입을 닦고 흡족한 듯 돌아보는, 검버섯이 환한 오후─식욕이

언제까지 그를 위로할까

 

-시집 『피의 현상학』에서

 

 


 

허진아 시인

1958년 광주 출생. 광주여고와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졸업. 교사로 근무하다 군포 e비지니스 고등학교에서 퇴직, 2010년 『유심』 으로 등단. 시집 『피의 현상학』. 한국시인협회회원.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