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호 시인 / 공공도서관 외 1편
전윤호 시인 / 공공도서관
저 숲을 이룬 아파트들 손보다 높이 올라간 서가들 창마다 불이 켜진 무덤들 어차피 다 읽어 볼 수도 없는 색인표 하나씩 둘러쓴 잃어버린 왕조의 유물들 내 살아온 얘기 책으로 쓰면 소설책 열 권도 모자라지 월세 올리러 온 노인이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면 퀴퀴한 침묵이 내리누르는 망자들의 열람실에서 눈에 불 켜고 무덤을 뒤지는 도굴범들 빌릴 수는 있어도 가질 수는 없는 집들 은행이 말한다 당신은 연체 중입니다 대출 금지입니다
전윤호 시인 / 못난이 감자
아들이 어릴 때 엄마 상 차리는 거 돕는다고 수저를 놓곤 했다 젓가락이 어려워 가끔 머리가 반대로 놓이기도 했다 잘못 놓은 젓거락 한 벌처럼 아내는 나와 반대로 잔다 내가 코를 곯기 때문이다 코앞의 맨발은 못생긴 감자 같다 엄지는 너무 크고 새끼발가락은 뒤틀렸다 이십 리 길을 걸어 초등학교를 다녔다더니 일하느라 지금도 매일 걷는다 내일을 위해 거꾸로 잠든 아내를 바로잡을 수 없다 그저 내 감자가 얼지 않도록 이불을 덮어 주는 수밖에 주차장에서 취객이 차를 걷어찼는지 경보기 소리가 오래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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