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김림 시인 / 그곳에만 가면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3. 4. 14. 05:00

김림 시인 / 그곳에만 가면

 

 

이상하지?

확실히 그곳은 이상한 곳

그곳에만 가면

기억상실증 환자들이 된단 말이지

저잣거리에서 손이 붓도록 악수하던 기억도

돌아서면 까마득한 옛일이 되고 마는

약속이나 하지 말지

뿌리 내리지 못할 공약만을 남발하여

끝내는 부도수표라니

참 이상도 하지

그곳에만 가면

또렷하던 귀가 어두워지고

눈이 슬며시 닫힌다던가

풍요로운 미래를 점지하는 풍수의 땅

그곳에만 가면

모두가 손을 놓고 뒷짐을 진다네

다, 터 탓인 게야

강물에 갇힌 섬

물살 따라 썩은 모래만 불러 모으는 지형 탓

우리 섬이 되지 못한

나의 섬, 너의 섬

 

 


 

 

김림 시인 / 바위를 사랑한 파도

 

 

오늘도

나 혼자서 애를 태웠다

그대는 꿈쩍도 않는데

온몸에 시퍼런 멍이 들도록

있는 힘 다해

그대에게 달려갔건만

질끈

눈을 감고 돌아앉은 무정함이여

어찌해야 그대를

마주 볼 수 있다는 말인가

목이 쉬도록

그대를 불렀다

갈라지는 소리가 이내 풀썩 쓰러져도

그대는 여전히 못 박혀 있을 뿐

끝내 우리는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인가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질긴 인연을 붙잡고

부축하는 어깨를 빌려 오늘도 나는

그대 뒷전으로 부서지며 가고 있는데

얼마나

더 오랜 세월을

그대 등에 매달려

애원해야 할 것인가

다정한 갈매기 한 쌍

내 눈물 애처롭다 훔치며 나는데

그대 정녕 언제까지 모른 척해야 하는가

 

 


 

김림 시인

서울 출생. 한국방송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4년  《시와 문화》 봄호로 등단,  시집으로 『꽃은 말고 뿌리를 다오』가 있음.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 회원. 공저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초록과 만나다> <가벼움에 대한 애착> 등 『시와 창작』작가회 사무차장 역임.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