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엄재국 시인 / 구토嘔吐

파스칼바이런 2023. 4. 18. 05:00

엄재국 시인 / 구토嘔吐

- 우주

 

 

캔버스는 회화의 우주다

나는 구상 또는 색채의

현상적 표현의

한계성에 대하여 절망한다

 

유와 무. 현상과 실체, 물질과 암흑, 존재와 무,

그 경계에 펄럭이는 깃발,

 

점과 선, 시간과 공간, 면과 입체의,

구토.

나의 구토는

쾌락의 원칙을 집어던진,

 

회화의 실체적 우주를 드러내기 위한

전복적 배설,

열락의 고통,

그 쥐상스(jouissance)의 구토다

 

그러므로

캔버스에 대한 물감의 구토는

그 우주에 대한 유한성의 내가 가지는

절대적 허무를 거부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나는 구토하고,

또 구토한다

 

계간 『애지』 2023년 봄호 발표

 

 


 

엄재국(嚴在國) 시인

1960년 경북 문경에서 출생. 200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정비공장 장미꽃』 『나비의 방』이 있음. 한국문협 문경지부 부회장.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