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진 시인 / 먼 훗날 외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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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진 시인 / 먼 훗날
먼 훗날 당신을 생각하노라면 지금 같은 가슴앓이는 가셔지겠지요 천 길 만 길 떠난 친구로만 아로새겨져 있기를 그저, 넉넉한 마음으로 푸르렀던 시절을 추억하기를
먼 훗날 당신을 만나노라면 지금 같은 가슴 떨림은 없어지겠지요 물새울음처럼 서러운 기억을 송두리째 끌어안고 깊게 파묻어 버린 후였다고 먼 훗날 당신에게 말할 수 있을 거예요
김윤진 시인 / 가슴에서 눈물이 배어나와
온 몸 곳곳의 예민한 신경은 곧 터질 것 같은 눈물구덩이라네 신열 앓는 가마솥이라네 그리움이 새어나와 말을 한다 느끼는 만큼 표현하라고 애써 품은 자리는 소중한 터임에도 섧기 만한 어이없음은 왜일까
그랬었지, 항상 마주하면서도 찻잔으로 뚝뚝 떨어지는 그리움의 잘디잔 허물 벗는 알갱이 가슴에 손을 얹으면 흐느끼는 눈물 낭자하게 배어나와 삭히려, 그만 삭혀버리려 폭우 속을 달려가는 와이퍼의 부지런한 움직임처럼 사는 것이 늘 부산했음을 그대는 아실까나
김윤진 시인 / 참회의 기도
사랑의 깃을 꽂은 님이여 마음을 열고 조심스레 다가왔거늘 두려움에 옷깃을 여미듯 마음의 창틀 사이로 살며시 몸 사려 내다 만 보았습니다
진홍색 장미가 이젠, 창백한 장미로 자줏빛 그늘진 광선 같음에 님이여! 왜, 그토록 연연해하십니까
무슨 대단한 귀족이던가요 보잘것없는 소시민인 것을 다만, 모진 상처 주고 난 후 참회의 기도를 드립니다
김윤진 시인 / 지금 난 카페에 홀로 앉아있다
무작정 약속도 없이 즐겨가던 카페에 앉아서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문뜩 고개를 들면 그리운 얼굴과 마주할 것 같기에 홀로 청승을 떨곤 했지
창문 너머로 장대비가 내리면 가라앉는다 점점 가라앉으면 그대로 땅 속으로 들어 갈 것만 같다 장마철이면 느슨히 스며드는 것 숨어 들어온 지독한 우울 하늘 보다 더 짙은 잿빛이다
새벽안개 같은 마음으로 조금씩 환한 세상을 바라보자 떨치려, 떨쳐버리려 지금 난, 진한 커피향이 가득한 카페에 홀로 앉아있다
김윤진 시인 / 친구의 뜰
모처럼 친구의 뜰을 찾았다 몇 해만의 해후였으나 허물없는 거리 오랜 친구였다 조용하게 내려앉은 화분처럼 세상에서 지혈되지 않고 후끈거리던 열기를 식힐 수 있는 여유로운 휴식 같은
왜 그리 바삐 달려왔는지 이따금 초봄 밤 공기처럼 싸늘함에 친숙할 만도 한데 상념은 길게 이은 세월만큼 또 다른 모습으로 형상을 갖춰 가슴을 누르고 있는 무게였다
김윤진 시인 / 신음하는 새처럼
이슬을 흡수하는 황금 소나기 신음하는 새처럼 날개를 떨고 있습니다
그대들은 누구십니까 창밖에 낯선 여인인 것을 왜, 사랑한다 하십니까
한낮에도 어둡고 지치도록
존재로만 살아 있을 뿐인데 미치도록 흔드는 당신들은 어디서 오셨나요 매질하는 핏물 같은 사랑이 무섭습니다
내 영혼의 노래는 가사도 없답니다 그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뿐
삼층의 하늘엔 안식처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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