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엄원태 시인 / 강아지들 외 5편

파스칼바이런 2025. 7. 3. 11:25

엄원태 시인 / 강아지들

 

 

젖 뗄 때가 된 동네 강아지 셋

아침 산책 때면 먼저 알아보고 우르르 달려온다

와서는 제 몸에 묻은 먼지들을 떨어낸다

털에 달라붙은 늦봄 햇살까지 마구 털어놓는다

 

저희들끼리 밟고 깨물고 짓까불면서도

지척에서 알짱거릴 뿐, 쉽사리 손길을 허용하지 않는다

막내인 듯한 검둥이 암놈만

배를 드러내고 누워 다리를 달달 떨어 댄다

 

개들에게선 어쩔 수 없이, 개 냄새가 난다

개들로선 어쩔 수 없는 것

 

저희들끼리 짓까불던 장난마저 심심해지자

네 발로 우뚝 서서 무심한 듯 내 얼굴을 올려다본다

각각의 슬픔으로 여문 검은 눈망울을

서로가 처음인듯 가만히 들여다보곤 하는 때가 있다

 

 


 

 

엄원태 시인 / 소읍에서의 마지막 산책

 

 

개를 끌지는 않았지만, 그는 제법 어슬렁거리며

은단풍 가로수 밑을 걸어 내려간다

 

어쩌면 내일도 그는 이 소읍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창백한 선생이나 쥐새끼 같은 관료들이 망쳐버린

학교나 관청에 분개하면서, 물들지 않으려면

스스로 떠나리라던, 잠꼬대 같은

서툰 결심을 굳이 되씹지 않아도, 이미 그는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생각건대, 모순만이 그를 철들게 했고

부조리를 통해서, 객관적 인식을 배웠으며

병病만이 오히려 고통스런 친구가 되어주었다

 

아직도 누구는 멋진 공중 비행에 넋을 뺏길 것이며

누구는 진흙탕에서 뒹구는 수고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병든 유원지여, 병든 소읍이여,

평화롭고 살기 좋다던 다리 건너 소읍이여,

삶은 얼마나 그대들 곁에서 정다웠던가

삶은 또 얼마나 느릿느릿 썩고 병들어가야만 했던가

결국 취객을 노리는 아리랑파 강도들처럼

죽음은 그대들의 허술한 호주머니를 노리는 것

일단은 적의를 감추고 허술한 듯, 접근해 올 터인즉

긴장된 그 얼굴에 눈인사라도 보내면 어떠할까

 

어두운 골목으로 그는 들어간다, 비틀거리며

 

 


 

 

엄원태 시인 / 감자들

 

 

 도무지 말이 없다. 침묵의 효용을 본능적으로 체득한 듯, 그들은 그저 무덤덤한 표정들이다. ‘감자 같은 무덤덤’이라는 관용어도 나름 괜찮겠다 싶었다.

 

 심지어 ‘주먹감자 먹인다’라는 세간의 비속어에 대해서도, 그들이 항의성명 같은 것으로 입장을 표명했다는 풍문은 일체 전해 들은 바 없다.

 

 그렇다 할지라도 세상살이의 드센 풍파에, 마음이란 곤고한 몸과 더불어 곧잘 다치곤 하는 것이어서, 울퉁불퉁 혹이 돋아나거나 시퍼런 멍이 들기도 했다.

 

 감자들로서는 꽤나 억울한 일이지만, 살아 몸 가진 것들의 숙명이거니 해야 하는 일이 어디 그뿐이었으랴.

 

 어쩌다 물에 빠지기라도 하면 그들도 아무런 대책이라곤 없이 곧장 가라앉는다. 마찬가지였을 테지만, 그들에게는 마지막 카톡 같은 애틋하기 그지없는 전언들을 남길 틈마저 없었던 거였다.

 

 어느 경우가 더 애통하고, 가슴 찢어지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인지는, 다만 그들로선 도통 요해할 수가 없는 일이기도 해서,

 

 재빨리 적당한 선에서 발을 빼고는, 짐짓 그들의 무덤덤함을 모방하는 자들이 급작스레 생겨나 번창한 세력을 이루기도 했던 것이다.

 

 감자들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었겠지만, 악의적인 비방과 중상모략이 그들까지 싸잡아 혹독하게 괴롭혔다는 소문이 흉흉했다.

 

 찬바람 부는 굴다리 밑 길모퉁이 새벽 인력시장 페인트통 모닥불 가에, 옹기종기 둘러선 사내들의 잔뜩 웅크린 어깨들을, 다용도실에서 문득 마주치곤 하는 때가 있다.

 자신의 제자를 구하러 정처없이 십년 공부 스승의 길을 떠난다

 

 마음 얻기란 그런 것

 적어도 십년 공부는 기본이다

 

 


 

 

엄원태 시인 / 일주(日柱)

 

 

 1

 겨울 저수지에 오전 내내 빛기둥이 선다.

 명지바람 부는 날이면 수면 위에 은하수가 뜬다.

 

 저 물별들은 쇠오리들의 무덤이다.

 창공의 별들보다는 덧없을 테지만,

 십억년 동안 생멸을 거듭해온

 물의 영혼이다.

 

 2

 창문 깊숙히 햇살 비껴들어, 병상 발치까지 환하다. 내 몸에, 빛기둥이 섰다. 몸에선, 기껏 살비듬 같은 먼지들이 떠다닌다. 때로 그것들도 먼 별들처럼, 반짝인다.

 

 수행승들은 스스로 토굴에 들어 용맹정진했다지만, 내 몸뚱이가 영락없이 토굴이다. 장좌불와(長坐不臥) 대신 장와불립(長臥不立)이다. 한 오백년쯤 지난 후, 뜻밖의 어느 도굴꾼에 의해 관 속까지 비껴드는 한 줄기 햇살처럼, 한 소식처럼, 내 몸에도 빛기둥이 섰다. 늦은 오후, 겨울 햇살 덕분이다.

 

 


 

 

엄원태 시인 / 독무(獨舞)

 

 

 검붉은 벽돌담을 배경으로

 흰 비닐봉지 하나,

 자늑자늑, 바람을 껴안고 나부낀다.

 

 바람은 두어 평, 담 밑에 서성이며, 비닐봉지를 떠받친다.

 저 말없는 바람은, 나도 아는 바람이다.

 

 산벚 꽃잎들을 바라보며 우두커니서 있던 때, 눈물 젖은 내 뺨을 서늘히 어루만지던, 그 바람이다.

 

 병원 주차장에 쪼그리고 앉아 통증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속수무책, 깍지 낀 내 손가락들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곤 하던, 그 바람이다.

 

 제 몸 비워버린 비닐봉지는

 하염없고, 하염없는 몸짓을 보여준다.

 저 적요한 독무는

 상처의 발가락마저, 두 발마저, 지워버렸다.

 

 너 떠난 후, 내 마음이, 내 마음의 풍선이 저렇다.

 허공에 나부낀다, 하염없다.

 텅, 비었다.

 

-『신생』 2008년 봄호

 

 


 

 

엄원태 시인 / 봄에 소박하게 질문하다

 

 

몸 풀린 청량천 냇가 살가운 미풍 아래

수북해서 푸근한 연둣빛 미나릿단 위에

은실삼단 햇살다발 소복하니 얹혀 있고

방울방울 공기의 해맑은 기포들

바라보는 눈자위에서 자글자글 터진다

 

냇물에 발 담근 채 봇둑에 퍼질고 앉은 아낙네 셋

미나리를 냇물에 씻는 아낙네들의 분주한 손들

너희에게 묻고 싶다, 다만,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산자락 비탈에 한 무더기 조릿대들

칼바람도 아주 잘 견뎠노라 자랑하듯

햇살에 반짝이며 글썽이는 잎, 잎들

너희에게도 묻고 싶다,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폭설과 혹한, 칼바람 따윈 잊을 만하다고

꽃샘추위며 황사바람까지 견딜만하다고

그래서 묻고 싶다,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시집 『물방울 무덤』 (창비, 2007)

 

 


 

엄원태 시인

1955년 대구에서 출생. 서울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 1990년 《문학과 사회》에 〈나무는 왜 죽어서도 쓰러지지 않는가〉등을 발표하며 등단. 시집 『침엽수림에서』 『소읍에 대한 보고』 『물방울 무덤』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 등. 1991년 제1회 대구시협상과 김달진 문학상 등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