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서상만 시인 / 동행 외 8편

파스칼바이런 2025. 7. 17. 14:23

서상만 시인 / 동행

 

 

내 방 낡은 의자

한 30년 끼고 살았더니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삐걱삐걱 서로 앓는 소리

잔소리까지 닮았다

 

몸이 가면

마음도 따라가는

늙음의 안분(安分)일까

둘 다 너무 헐어

어디 명부전(冥府殿)엔들 가지겠나

 

 


 

 

서상만 시인 / 비 맞고 온 시

 

 

고단하게 비 맞고 온,

그대 젖은 머리

빗물이나 털어주리

여기 오는 내내

떨리는 어깨 들썩이며

글썽거린 아픔이니

 

 


 

 

서상만 시인 / 동두천 내 시비(詩碑)

 

 

풀잎은 늘

잠자듯 살아 있어야 한다고 썼다

 

사람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봐야

삶을 안다고 썼다

풀잎처럼

 

바람 앞에 사람들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이, 꼭

풀잎 같아 그렇게 썼다

 


 

 

서상만 시인 / 수양버들

 

 

이 봄,

내 시에도 물이 올랐으면

낙낙하게 휘어지는

낭창낭창한 시,

은유의 은어 떼가 하얗게

나를 몰고 가는

 

그런

부드러운 회초리

 

시의 핏줄이여

 

 


 

 

서상만 시인 / 슬픈 경계

 

 

그래도 무덤가 풀은

또 새봄을 맞았네

 

 


 

 

서상만 시인 / 들판이란

 

 

자식새끼 다 안아 키운

 

울 엄마 펀펀한 가슴이다

 

 


 

 

서상만 시인 / 망우리 근처

 

 

 

저편, 또 누구의 일생 하나

부리고 간 자리

함께 묻힐 듯 울어쌓던

어느 간절한 사람도 떠나고

 

납빛 낮달 아래

소국(小菊) 하나 바람에 흔들리네

 

-시집 <노을 밥상>에서

 

 


 

 

서상만 시인 / 탑돌이

 

 

일찌감치 염불 끝낸

돌탑이

내 등을 토닥였습니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로

“돌아보게,돌다보면

차차 알게 될 걸세”

 

연등(燃燈)은 바람에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서상만 시인 / 활짝 지는 꽃 보러

 

 

활짝 지는 꽃 보러

 

금산 서대산(西臺山)에 갔어요

 

가지마다 꽃 지는 소리

 

개덕사(開德寺)풍경소릴 깨워

 

득도 못한

귓전을 새파랗게 채워줬어요

 

-시집 <노을 밥상>에서

 

 


 

서상만(徐相萬) 시인

1941년 경북 포항시 출생.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 수학. 고려대 경영대학원 수료. 1982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 <시간의 사금파리> <그림자를 태우다> <모래알로 울다> <적소> <백동나비>. 동시집 <꼬마 파도의 외출> <너, 정말 까불래?> 등. 월간문학상, 최계락문학상, 최계락문학상, 포항문학상, 창릉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