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신이인 시인 / 펄쩍펄쩍 외 4편

파스칼바이런 2025. 7. 18. 16:50

신이인 시인 / 펄쩍펄쩍

 

 

 마음은 주로 개구리였다

 기분 나쁘게 축축했고 건조할 때는 곧 쪼그라들어 죽을 것 같았다

 

 마음이 움직여서

 이따위 것도 마음이라는 처참을 깨닫게 할 때가 있었다

 긴 다리를 힘껏 뻗으면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마음은 마음대로 나를 떠났고 나는 마음을 잘 욕하기 위해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징그럽고 뻔뻔한 개구리 자식이라고

 내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가만 안 있고, 가만 있으라 해도 가만 안 있고 속에서 속을 걷어차면서, 자꾸 튀어 나가려고・・・・・・

 그라나 누구도 나의 마음을 같이 욕해 주지는 않았는데

 그저 측은하게 손을 잡아 주거나 마음 없이 빈 나로부터 멀어지려고 했고

 비 오는 날에 나는 마음을 찾아나서려고 전단지를 만들어 길바닥에 뿌리거나

 뽀송뽀송하고 귀여운 가짜 마음을 털실로 꿰매어 본 적도 있었다

 

 그래도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면 알 수 있었다 얼만큼 기가 찬 만행을 저지르고 당하는지도

 

 알아도 난 무능한 주인이니까 독립영화관의 자는 건지 딴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싫다면

 

 끝내 마음이, 결코 가서는 안 되는 곳에 가서 죽지도 않고 만신창이로 돌아왔다가 다음날 절뚝거리며 다시 높이 뛰는 연습을 시작했을 때

 

 나는 마음의 배를 갈라 죽이고 싶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나쁜 게 아니다 진짜 나쁜 건

 

 죽은 마음이 곁에서 짓무르고 있더라도

 그걸 못 보고

 밟기까지 하는 사람이었다

 아주 평범한

 어떤

 내가 머리와 몸을 버려 가며 닿으려 한

 

 


 

 

신이인 시인 / 나에게는 좋은 감촉이 있다

 

 

선인장은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린 주먹처럼 자란다

가운뎃손가락이 살찌고 튼튼해져서 다시 주먹이 되고

거기에서 또 가운뎃손가락

가운뎃손가락

 

돌려서 말하는 건 특별한 기술 같아

천천히, 원에 가깝게

모서리가 없게

다쳐도 증거가 남지 않도록

 

일단

입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말에게 지금 튀어나가서는 안 된다고

잠깐 놀다가 이따 다시 오라고 일러두었다

 

지칠수록 무럭무럭 자라나는 띠 모양 말

자기를.... 질질 끌고.... 내 몸속을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다가

저 혼자 엉켜서 이도저도 못하고 있을 때

 

나는

 

괴로워

묶였어

암 덩어리가 생겼어

만지면

동그래

근데 아파

 

날뛴다

이건 폭탄이다

그렇지만 이겨낸다

가시광선 및 굉음 같은 게 함부로 찌르게 둘 수 없다 그게 누가 됐든지간에

 

나는 나를 세게 안는다

 

그리고 불현듯

알게 된다.

〈나에게는 좋은 감촉이 있다>

 

있는 수준이 아니고

아무도 모르는 게 말이 안 될 정도다

어떻게 이 느낌을 지금

나밖에 몰라?

 

순간 외로웠고

참을 수 없어졌다

베란다로 나간 다음 보이는 식물을 끌어안고 아무 비밀이나 말했다

 

느리고 평온한 뻐큐를 돌려받았다

 

-계간 『시와 반시』 2021년 겨울호

 


 

신이인 시인 / 영접

 너는 악기란다

 너를 사용해라

 그러나

 맹세해라

 스스로를 파괴하는 어떤 행동도 않겠다고

 오래전 신과 약속했다

 -나는 귀신이랑 한 약속도 잘 지킨다

 

 폐건물에

 연주자로 초대되었었다

 셔터를 내리고 문을 잠근 후 시작되는 그들만의 생활 그들만의 파티 그들에게 내놓은 매물

 온몸의 열쇠 구멍을 다 잠가놓고

 열쇠는 신에게만 넘겨주었다

 바람이 세게 불 때마다 저절로 비명이 흘러나왔다

 리코더처럼

 신은 노래를 좋아했고

 날 들었다가 안았다가 만졌다가

 구멍을 두루 보살피며 멜로디를 지었다

 느린 멜로디

 어느 순간 나는 이 노래가 듣기 싫었다

 이건 무슨 장르인가요?

 대답이 없었다

 고요 속에서

 내가 듣기 싫은 노래

 내가 부르고

 내가 듣는 날

 내가 듣는 나

 

 # # #

 흉가 체험이 유행하던 여름에

 당신은 몇개의 버려진 물건들을 보았습니다

 금 간 엘피판과 휴지심

 거미줄인지 곰팡이인지 모를 것이 뭉쳐진 이불을 보았어도

 아마 나를 발견하진 못했을 텝니다

 나는 이불 밑에서 숨죽여 울었습니다

 들키기 싫어서

 들킨다면

 당신은

 고함을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도망가거나 기절했을 것입니다 환하고 북적거리는 장소로 뛰어가 자신이 맞닥뜨린 것에 대해 상세히 늘어놓고 즐거움을 나누었을 것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고

 즐겁게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구멍이 많은 악기로 태어나 자리에 가만 있다보면

 소음을 내기도 하고

 음악을 만들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이 지구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조차 바쁘게 편을 바꾸고

 그걸 바람이라고 배워왔습니다

 음…음…음

 아무리 사랑받아온 음악가라도 어느 순간 말할 수 있다

 저는 음악을 한 적 없습니다

 지긋지긋하고 추한 신음을 멈추지 못했을 뿐

 그것이 나의 인생이라면

 여러분은 무엇에 박수를 치고 무엇에 감동했다 말하겠습니까

 차라리 내가 철저히 망해버렸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다면

 이렇듯 숭악한 포르노쯤 한두번으로 멈춰도 충분하였을 텐데 아무리 미움 받아온 매미라도 생각할 수 있다

 여름 동안, 저는 몸을 바쳐 노래를 불렀고 한번뿐인 사랑을 했습니다

 수천수만의 영화에 배경음악으로 쓰일 만큼 멋진 사랑을요 아무리 우렁찬들 무시되었을 수도 있겠다만

 그것이 나의 인생 전부였다면 어떻습니까

 # # #

 이건 온전한 나의 의지로, 멜로디에 붙인 가사다

 끝내 의지를 가진 악기를 벌주기 위해

 신은 자유를 알려주기로 결정했다

 가거라

 어디 한번 가보거라

 나는 열쇠를 쥐고 문으로 간다

 귀신의 집에서 아무렇지 않았던 건

 용감해서가 아니라 내가

 귀신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

 숨지 않고 살았으나

 저절로 숨겨졌던

 투명이라는 속성이 적합할까? 이제 와선

 폐가가 나를 위하여 있고 내가 폐가를 위하여 있는데

 산꼭대기에 서서 몸을 펼치고 바람이 거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기차처럼 나를 뚫고 지나갈 때에

 피리 소리가 난다

 맛있는 피리 소리가 난다

 다리 없는 뱀에서부터 다리 수십개 지네까지

 열린 문으로 돌진하였다

-창비 2022년 여름호

 

 


 

 

신이인 시인 / Grooming

(상처를 핥을 수 없는 동물)​

 

 

1.

고슴도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했을 때

당신은 나를 말렸다

그건 위험하다고 아직 더 기다려야 한다고

기다리면 사라질 것 같았다

오래전 손안에 엎드려 있던 작은 고슴도치

처음 가졌지만

쓰다듬을 수 있었다

그 일을 잊기 전에 써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쓰다듬는 일에는 방향이 중요하다’

일기장에는 그렇게 적혀 있다

일기장에는 오래된 날짜가 적혀 있고

많이 손을 댄 듯한

그러나 전부 나의 손이었을 자국들이 아무 방향으로나 나 있다

가시들은 나무 필통 속으로 가 속눈썹처럼 눕는다

가지런하게

뾰족하지 않다는 듯이

그래서 아무런 쓸모도 없고 그래서 예쁘다는 듯이

​​

2.

20XX년

일기를 쓰지 않는 날

나는 깨끗한 손을 하고 박물관에 가는 상상을 한다

플라스틱 사육장에 든 고슴도치를 바라보다가

벽면을 두드리다가 안내원에게 주의를 들었으리라

기념품 가게로 가서

고슴도치를 안 본 사람들에게 줄 나무 연필을 살 수도 있다

그래도 그들 중에는 고슴도치를 만져 본 사람이 있다

어쩌면 고슴도치를 키우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얼굴을 나란히 하며 웃고

몇 번이고 매끄럽다

찌르지 않았거나

찔리지 않은 모습으로

태어날 때부터 방향을 알았던 사람처럼

부드러운 손을 비비며 악수할 수도 있다

으레 고슴도치들이 그러하듯이

​​

3.

그랬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는

XX20년

나는 비교적 깨끗한 손을 하고 박물관에 간다

가려진 사육장이 줄지어 서 있다

가지런하다

무엇을 기대하며 이곳을 방문해야 할까?

사육장이 거대하니 나는 거대한 생각을 한다

사람을 먹는 큰곰이나

끝을 볼 수 없는 나무의 꼭대기에 사는 아프리카 앵무새

복원해 둔 백악기의 초식 공룡

생각은 고슴도치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이제 고슴도치는 생각을 조금도 아프게 할 수 없다

그러나 고슴도치를 좋아했으니

이야기는 개속되어야 한다

두렵지만 사육장의 문을 연다

가방 속

필통에는 더 이상 예쁘지 않은 몽당연필들이 기다리고 있다

​​

4.

나는 오래된 연필을 돌려주어야 한다

처음 고슴도치를 가르쳐 준

나를 박물관으로 이끌어 온 사람에게

고슴도치는 내가 극복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상처를 주었다

귀를 뚫거나

문신을 한 사람처럼

나는 웃으며 고슴도치를 말할 수 있다

“그는 귀엽고 부드러운, 최고의 반려동물이었습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무성한 동물들 사이에 서서

나는 웃으며

멸종했을지도 모를 고슴도치를 위하여 연필을 깎는다

나 이외의 아무도 읽지 않을

긴 일기를 쓴다

 

 


 

 

신이인 시인 / 왓츠인마이백

 

 

가그린

칫솔 치약 세트

편의점에서 산 9900원짜리 충전기

비싼 지갑(명품을 사면 기분이 좋아지나 시험해 보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블루투스 이어폰(그다지 관심 없는 가수의 에디션이고 선물은 늘 이런 식이다)

핸드폰

트웍스 초코바

고양이 밥

영수증 조각

 

들고 있는 것은 들고 있는 것

닳아 없어지거나 고장날 때까지

 

손을 잡고 있는데, 바퀴벌레가 너의 운동화 밑으로 기어가려는 걸 봤어

떨어트린 반지를 줍는 척

얼은 앉아서 잡아서 가방에 넣었다 데이트를 망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것은 나의 사랑 방식이었으니 한순간 바퀴벌레 앞 무더기를 떠맡을 가능성을 내포한다

 

다정했던 약혼자

그는 지갑을 훔치려다가 이 가능성에 손목이 잡혀버리고

 

서둘러 손목을 끊고 손목을 감싸고 하얗게 질려서 달아나는 약혼자

버려진 그의 왼손은 내게

“이게 다 너 때문이다.”

뺨을 갈기고 아스팔트 맨홀로 기어들어 갔지

다섯개 손가락을 구르며

 

내게도 다섯 개 더하기 다섯 개의 손가락이 있고

난 가급적 이것을 모두 사용하여 초코바를 깐다

천천히

한입만,

이라 말하는 아무나 달려오도록

달려와 주기만 한다면

아랫잇몸을 드러내면서 아니, 아니야 괜찮아

너 다 먹어

얼마든지 나눌 수 있는데

 

배고픈 사람일수록 입안에서 악취가 나는 건

어째서일까

빈 공간의 냄새는 어째서 어김없이 아무도 속이지 못하고

저는 없어요 없는 사람입니다 없어 보이지요

티를 내버리고 마는걸까

 

자동차 보닛 밑의 고양이가 대답한다

그럴수록 쿠션 팩트를 꺼내 뺨을 두드려, 손가락 자국을 감추어야 하는 거야 모자란 부분은 남의 관심을 끌어 애정을 뜯어 채울 수 있는거다

하지만 넌 화장품도 안 들고 다니는 게

글러 먹었구나

다리 하나가 모자란 벌레처럼

다리 하나가 보자란 벌레처럼

 

호의에 간신히 매달려 유지되는 삶은 지긋지긋한 도박

뭐든 내 손끝에선 부리나케 도망가 멀리*

 

멀리멀리 도망가는 고양이야

그렇다고 특별히 날 싫어하는 건 아니겠지

 

특별한 마음은 특별한

관심

그러나 미움받을 그릇조차 되지 못하지 때문에 저는요 길거리에 가장 많이 보이는 식으로 머리를 자르고 무신사스토어에서 랭킹 순서대로 옷을 사 입는다고요 이왕이면 흰색 아니면 검정색으로

이 가방, 튼튼하고 평균적인 사각형, 깨끗하게 관리하지만 안에 뭐가 들어가는지 내용을 하나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고 저는 어쩌면 그것과 평생 싸우고 있는 것 같아요 그걸 왜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미움받을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생물들과 이 땅덩어리에 태어나버렸잖아요 마음을 나누고 싶은 채로

 

그럴수록 확실히 말해두려고 합니다

저는 바퀴벌레를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아요

단지

그것은 도움받은 것을 기억하였고

미안한 일을 잊지 않았다고

 

미움 마음 미안

그리하여 어떻게 된 것이냐는 경멸 어린 시선에 나는 대답할 수 있다고

 

저 지금, 바퀴벌레랑 같이 있어요

차 마시러 왔어요

 

"우리 아이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주어 고맙습니다."

더듬이를 갸우뚱거리며

순진하게 웃는 얼굴

원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저도 실은 못된 사람이어서요

아까의 고양이가 낯익은 손을 먹어 치울 때

- 이 벌레는 다리가 다섯 개뿐이네

그 앞에서 밥을 줄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지나쳤거든요

그걸 인정하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그동안 아기 바퀴들은 잘 자라주었어요

당신은 걱정스럽게

아기 바퀴들이 무엇을 훔쳤나요? 더럽혔나요? 망가뜨렸나요? 묻지만

전혀

 

감사할 일이었어요

나는 탁자 위에 올려진 엄마 바퀴의 손에

전 연인이 내던진 반지를 선물했다

가방 밑바닥

내가 들어 있다고 쓰지 않은 것

없는 척한 것

꺼내서 끼워 주었다

진심으로 잘 어울렸다

 

*TXT - 0X1 = LOVESONG

 

- 월간 《현대시≫ 2021년 11월호, 「신인특집」에서

 

 


 

신이인 시인

1994년 서울에서 출생. (본명: 신예은). 경희대 국어국문과 졸업. 2021『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