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용 시인 / 비꽃 외 1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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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용 시인 / 비꽃 - 적(適) 8
물방울도 꽃을 피운다 비꽃이다 빗방울이 유리창에 부딪쳤을 때, 문득 손등에 떨어졌을 때 거기 맺히는 물의 꽃잎들 무채색이지만, ‘비꽃’을 보는 눈은 탄성으로 물든다 그런 꽃이 있는지도 몰랐던, 발견에의 기쁨 비꽃이 우리에게 건네주는 꽃 한 송이 오늘, 이 꽃을 누구에게 건네줄까? 상상하는 순간의 이 번짐을
―시집 『비는 사람의 몸속에도 내려』 (걷는사람 2019)
김신용 시인 / 도장골 이야기 - 부레옥잠
아내가 장바닥에서 구해온 부레옥잠 한 그루 마당의 키 낮은 항아리에 담겨 있다가, 어제는 보랏빛 연한 꽃을 피우더니 오늘은 꽃대궁 깊게 숙이고 꽃잎 벌리고 있다 그것을 보며 이웃집 아낙, 꽃이 왜 저래? 하는 낯빛으로 담장에 기대섰을 때 저 부레옥잠은 꽃이 질 때 저렇게 고개 숙여요, 하고 아내가 대답하자 밭을 매러 가던 그 아낙, 제 꽃 지는 자리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구먼, 한다
제 꽃 지는 자리,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그 꽃 제 꽃 진 자리,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그 꽃
몸에 부레 같은 구근을 달고 있어, 물 위를 떠다니며 뿌리를 내리는
물 위를 떠다니며 뿌리를 내려, 아무 고통도 없이 꽃을 피우는 것 같은
그 부레옥잠처럼 일생을 밭의 물 위를 떠흐르며 살아온. 그 아낙
오늘은 그녀가 시인이다
몸에 슬픔으로 뭉친 구근을 매달고 있어, 남은 생 아무 고통도 없이 꽃을 피우고 싶은 그 마음이 더 고통인 것을 아는
저 소리 없는 낙화로, 살아온 날 수의 입힐 줄 아는
김신용 시인 / 거처 1
저기 봐! 절벽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나무도 있지만, 그 나무의 가지에 뿌리를 내려 잎을 피우는 나무도 있네. 세상에! 하필이면 아슬아슬 절벽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나무의 가지에 뿌리를 내려, 그 수분을 분양받아 살아가는 나무라니! 누구는 집세 한 푼 안 내고 무전취식을 하듯 살아가는 나무를 보며, 이제는 막장에 다다른 생의 또 다른 출구 전략처럼 쳐다보기도 하지만, 그래, 눈 뜨면 언제나 추운 겨울 숲이어서 나무들, 모두 옷을 벗는 나목의 세계여서 가만히 타인의 세계에 제 몸을 심는 기생奇生-, 혹은, 기생畸生-.
그 순간부터 다른 나무의 수분을 분양받아야 겨우 살아남는, 겨우 살아가는 듯한, 저 겨우살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너고 네가 나일 것 같을 때
겨우살이, 다른 나무의 잎이 져야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는
그렇게 슬픔까지 분양받아야 지상의 방 한 칸, 푸르게 빛날 때
-시집 『진흙쿠키를 굽는 시간』, 백조, 2023년
김신용 시인 / 검은 마리아
판잣집의, 그 삐걱이는 계단 같은 흉곽을 가진 역 앞, 빈민굴의 그 좁고 어두운 골목 같은 눈빛을 가진 그 골목길을 서성이며, 잠깐 쉬었다 가실래요? 지나가는 남자들의 옷자락을 붙드는, 그 눈웃음에서 거부할 수 없는 쓸쓸함이 묻어나던, 헐값의 숙박비만 지불하면 누구나 쉽게 묵어갈 수 있었던, 퇴색한 벽지와 때묻은 이불 흐린 전등불빛이 유일한 장식품인, 뒷골목의 여인숙처럼 길을 걷다가 쉬고 싶을 때, 그렇게도 쉽게 눈에 띄던 하룻밤 자고 나면 뒤돌아보지 않아도, 그 초라한 간판처럼 너무도 쉽게 잊혀지던 다시 찾아들면, 신음 같은 그 흉곽의 삐걱임으로 더 포근하던 가슴, 구멍 숭숭 뚫린 그 흉벽의 空洞으로, 가족들의 얼굴이 비명처럼 드나들던 그 몸을 팔아, 진폐의 가난을 치유하려 했던 가난을, 가난으로 치유하려 했던 가난이 퇴화하면 무엇이 되는지 뻔히 알면서도 가난을 아기 예수처럼 안고 있었던, 가난을 아기 예수처럼 안고 있었으므로, 자신의 몸이 허물어져가는 마구간처럼 될 수밖에 없었던, 그 거꾸로 선 生 화려한 여관과 러브모텔들이 즐비한 거리에서 실종신고도 없이, 실종되어 버린 결코 아기 예수를 낳아본 적 없으므로, 흰색이 아닌 아프리카 흑인의 마리아는 물론 검은 마리아이겠지만 제3세계, 전쟁과 기아로 병든 아프리카의 검은색도 아닌 가난이 세습되는 空의 나라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이 땅의 흙색이면서도, '검은 마리아'라고 불리었던 눈물겹게도, 푸줏간에 놓인 고기 한점도 못된.
김신용 시인 / 다리미의 생
다리미는 몸속에 뜨거운 숯불을 담고 일생을 살아간다. 그 숯불로 자신을 달구어 세상살이의 온갖 구김살들을 편다. 몸속의 뜨거운 숯불이 자신의 살아 있는 삶의 징표인, 다리미. 만약 몸속의 숯불이 꺼지면 스스럼없이 마루 밑이나 구석진 곳의 적막 속으로 걸어 들어가 고요히 녹슬어 간다.
마치 불이 아니라 불(佛)같은, 저 다리미의 숯불―.
그 숯불을 담기 위해, 오늘도 제 몸은 닳아 가면서도 그의 눈은 빛난다.
-2024년 < 문학 / 사상 > 10호 발표
김신용 시인 / 꽃의 크레인
크레인을 보면, 무거운 돌의 무게도 가볍게 들어 올리는 쇠의 팔뚝을 보면, 마치 나비의 유전자를 가진 것 같다. 어떤 중력도 가볍게 파동치게 하는, 공기의 근육을 가진 것 같다.
그래, 오늘도 꿈을 짓누르고 있는 현실의 두께 같은 암반을 들어 올려, 아득한, 깊이 모를 바닥의 심연에서 거대한 삶의 이미지를 끌어 올리는
상상력의 눈빛을 닮은,
저 크레인을 보는 것은―. -2024년 < 문학 / 사상 > 10호
김신용 시인 / 돌
미술 전시장에 돌이 몇 개 놓여 있다 아무런 가공도 하지 않은, 길바닥을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돌이, 흰 천이 깔린 작은 사각의 좌대 위에 ' 이것은 돌이지만 돌이 아니다’라는 표정처럼 놓여 있다 그 표정은, 돌의 지느러미처럼 돋아 있다 왜 날개가 아니고 지느러미일까? 하는 의문도 없이, 지느러미처럼 돋아 있다 돌 앞에는, 서울로 압송되는 전봉준 유관순 이육사 같은 역사적 인물들의 흑백사진이, 돌의 무표정처럼 붙어 있다 마치 닫힌 돌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문처럼 보인다 아무렇게나 길바닥을 굴러다니는 돌이지만 사진 속 인물들의 손이 쥐었던 돌이라는 암시, 저 은유―. 무엇일까? 아무런 의미 없이 놓인 돌도 당신이 손에 쥐면 지느러미가 돋아난다는 뜻일까? 죽은 돌이 눈을 뜬다는 의미일까? 그 돌을 보는 순간, 또 다른 “지느러미가 아름다운 사람”이 생각났지만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날개가 아니라 지느러미가 아름다운 사람, 누구일까? 저 돌처럼 길바닥을 아무렇게나 뒹굴어 다니지만 누군가가 손에 쥐면 지느러미가 돋아나는 사람? 그런 무늬 또한 돌의 무표정 속에 담겨 있지만 여전히 닫힌 돌의 내부로 들어가는 문처럼 보이는 돌의 지느러미―, 혹은 돌의 무늬―.
저기, 돌이 몇 개 놓여 있다. ‘이것은 돌이지만 돌이 아니다’라는 표정처럼 놓여 있다 길바닥을 아무렇게나 뒹구는 돌이어서 전혀 상품이 되지 않는데도 상품이 되지 않으므로 비로소 자신이 존재한다는 듯이, 돌이 놓여 있다
저 “지느러미가 아름다운 사람―.” 계간 『상살린』 2021년 찰간호) 발표
김신용 시인 / 진흙쿠키를 굽는 시간 5
검은 새떼가 보이는 날이 있다 자욱하다 땅거미인가 눈을 비벼 봐도 마치 비문증처럼 커다란 얼룩이 떠다닌다 안개 같다 농무현상이라면 무적(霧笛)이라도 있을 텐데 사위가 조용하다 적막이다 비박 같은 고요다 갑자기 뼛속으로 냉기가 회오리친다는 말이 실감난다 얇은 피부의, 낡은 흙벽을 파고드는 영하 20℃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방에 텐트를 친 것 같다 상자 속에 상자가 든 것 같은 텐트 안에 누우면 시야는, 궁형이다 공중을 떠다니는 검은 새 떼의 막 같은, 궁형의 공간―. 시야는 타원형의 알 속에 웅크린다. 깨어지지 않는 적막은, 돌 속이다 삼엽충 화석이 몸을 웅크리고 있다 몇천 년을 지난 것 같다 탁본은 몸의 뢴트겐이다 뼈의 지도를 그리고 있는 새의 조상(彫像)이 선명하다 앙상한, 내면의 길들이 방사형으로 뻗어나간다 거미줄, 거미줄 같기도 하다 손으로 거둬내면 켜켜이 낀 먼지가 흘러내린다 어디선가 무적이 들린 것 같기도 하다 문을 열고 나가면 길이 보일 듯하다 그 환청 속에 자욱한 새 떼, 검은 새 떼들―, 날아올라 또 길을 지운다 이 위태로운 벼랑에서의 비박(飛泊)―, 이것이 생이라면 그래 생이라면, 알을 닮은 궁형의 공간이 궁핍에게 먹일 최후의 식량 같다 돌 속에 누운 삼엽충 화석이 눈을 뜬다 다시 무적―, 한때 곁에 누웠던 몸의 온기가 느껴진다 몸의 탁본이 되어 있는, 36.5℃의 체온이 따뜻하다 계간 『시와 경계』 2019년 여름호발표
김신용 시인 / 돌에 관한 에피소드 2
코로나19 때문에 한산해진 거리를 걷다 서점으로 들어선다 지하철에서 내려 화장실에 들렀다가 변기에 마스크를 빠트린 나는 마스크를 쓴 여자직원의 왜 마스크를 쓰지 않느냐는 눈길을 미안해하며 진열대의 책들을 훑어보다가 세계문학 코너에서 무작위로 책 한 권을 뽑아들었는데, 「페널티킥 앞에선 골키퍼의 불안」이라는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의 소설이었다 책 표지에는 2019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소개 글과 함께 ‘무질서한 전개 무의미한 농담 강박적인 말놀이로 그리는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라는 표제사가 쓰여 있었고 뭉크의 그림 「절규」가 표지 사진으로 실려 있었는데 나는 해상도가 선명한 뭉크의 「절규」라는 그림과 「페널티킥 앞에선 골키퍼의 불안」이라는 제목이 잘 어울려 보여 망설임 없이 계산대로 와 책값을 지불하고는 여전히 불안해하는 여자 직원의 눈빛을 미안해하며 서점을 나와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섰을 때 잠깐 책 첫 페이지를 펼쳐 보았는데, ‘이전에 꽤 유명한 골키퍼였던 요제프 블로흐는 건축 공사장에서 조립공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하러 가서는 자신이 해고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라는 소설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신호등이 푸른색으로 바뀐 것을 보았다 나는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리고 어쩌다 마주치는 행인들의 따가운 눈길을 피해 몸을 숨기듯 뒷길을 찾아 들어 허적허적 걷다가 ‘왜 나는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라는 글과 함께 시인 김수영의 얼굴이 판화로 인쇄된 벽보를 발견하고는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다가 그 벽보가 가리키는 미술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그때 강렬하게 내 눈길을 끈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전시장의 한쪽에 놓여 있는 몇 개의 돌이었다 그 돌들은 조그만 좌대 위에 놓여 있었는데 아무렇게나 길바닥을 굴러다니는 돌이지만 당신이 손에 쥐면 지느러미가 돋는다는 표정으로 놓여 있었다 나는 그 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전시장이 창문이 없는 실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얼른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린 채 전시장을 빠져나와 약국을 찾아 마스크를 구입하려 했지만 요일제 때문에 실패한 나는 그런 자신에게 돌을 던지듯 ‘무의미한 농담 강박적인 말놀이’처럼 비틀거리는 거리를 다시 허적허적 걸어갔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모든 바이러스의 매개체처럼 보이는, 거리의 나무들도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처럼 서 있는, 마스크가 어느 방향에서 날아올지 모르는 공을 막아내는 손처럼 느껴지는 마스크가 없는 내가 돌처럼 뒹굴고 있는 것 같았던, 그날 웹진 『시인광장』 2024년 2월호 발표
김신용 시인 / 진흙쿠키를 굽는 시간 13
가시可視가, 가시 같은 날이 있다. 참 낯선 풍경을 보는 날이다. 낯선 풍경이라지만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싶은 날이다. 서울역 광장 한 켠에 작은 제단이 차려지고 향이 피어오른다. 역 지하도에서 광장의 구석진 곳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노숙의 넋들을 위한 위령제다. 눈에 보이는 것이 가시 같다. 可視가, 가시 같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들―, 살아서 이미 죽은 사람들―, 얼굴이 없는 얼굴들―, 눈앞에 마치 얼룩처럼 떠오른다. 눈에 박힌 비문(飛蚊)처럼 떠오른다.
저것도 빈곤 포르노 같다고 해야 하나? 자신의 불행을 과장하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않던 사람들―, 흑백으로 남겨진 초라한 몇몇 영정사진도 보인다. 눈앞이 흐릿해진다. 위태로운 벼랑에서의 삶들―, 그 비박(飛拍)의 생들―.
오늘, 흑백의 저녁 어스름 속에서 이제 죽어서 제 그림자를 새처럼 날려 보내고 있다. 지하도에서 역 광장 구석진 곳에서 빈손을 내밀 때마다 새를 날려 보내던 사람들―, 그러나 한 마리의 새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끊임없이, 더욱 악착같이 새를 날려 보내던 사람들―. 이제는 죽어서 다시 제 그림자를 새처럼 날려 보내고 있다
그래, 可視가 가시 같다. 아직도 날아오지 않는 새를 기다리는 눈이, 가시 같다. 하루하루가 검은 포르노그래피 같았던
그 벌거벗은 시간들이, 가시 같다 -웹진 『시인광장』 2024년 2월호 발표
김신용 시인 / 잉어
저 물의 만년필, 오늘, 무슨 글을 쓴 것 같은데 도무지 읽을 수가 없다 몸속의 푸른 피로 무슨 글자를 쓴 것 같은데 읽을 수가 없다 지느러미를 흔들면 물에 푸른 글씨가 쓰이는, 만년필 저 글은, 잉어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읽을 수 없는 것이겠지만 잉어처럼 물속에 살지 않고서는 해독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잉어는, 오늘도 무슨 글자를 쓴다 캘리 그라피 같은, 그 변형된 글씨체로 무슨 글자를 쓴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사람의 얼굴을 닮은, 잉어의 얼굴 눈꺼풀은 없지만 깊고 그윽한 눈망울을 가진, 잉어의 눈
분명 저 얼굴은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편지에 엽서에 무엇인가를 적어 내게 띄워 보내는 것 같은데 도무지 읽을 수가 없는. 오늘 나는 무엇의 만년필이 되어주고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몸속의 푸른 피로, 무슨 글자인가를 썼을 만년필, 수취인이 없어도, 하다못해 엽서라도 띄웠을 만년필.
그래, 잉어가 되어보기 전에는 결코 읽을 수 없겠지만 내가 너가 되어보기 전에는 결코 편지를 받을 수 없겠지만
그러나 잉어는, 깊은 잠의 핏줄 속을 고요히 헤엄쳐 온다
잉어가 되어보기 전에는 결코 읽을 수 없는, 편지가 아니라고 가슴에 가만히 손만 얹으면, 해독할 수 있는 글자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몸에, 자동기술(記述)의 푸른 지느러미가 달린 저 물의, 만년필-
계간 『시인동네』 2012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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