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허청미 시인 / 아이와 파도 2편

파스칼바이런 2025. 8. 2. 23:00

허청미 시인 / 아이와 파도

 

 

아빠! 물이 왜 자꾸만 때굴때굴 굴러 와?

 

네 살배기 아이가 바닷가에서

한 줄 제 어록을 작은 혀로 굴리고 있을 때

 

아비는

세상이 왜 자꾸만 멀미가 나는지

얼결에 삼킨? 하나가

낚시 바늘처럼 목젖에 걸렸다

 

 


 

 

허청미 시인 / 꽃무늬파자마가 있는 환승역

 

 

이쁜 꽃무늬파자마 한 번 입어봐요

 

봐요! 수천 개 달이 떠 있는 배밭. 배꽃들이 자지러지잖아

요.그 위로 물고기가 휙휙 나르고 연인들이 칸디루*처럼

입을 맞추고 있잖아요 환상적이죠? 이렇게 한 백년 쯤 살아

보고 싶다구요? 그래요, 천 년이면 어때요 꽃무늬 잠옷을

입고, 행복한 미라처럼 살아봐요

그렇게 가로막지 말고 오른쪽으로 좀 비켜주실래요?

 

시곗줄에 눌린 맥박이 초침처럼 뛴다

 

-꽃무늬 파자마 한 벌에 5,000원-

 

지하철 4호선과 7호선 환승 梨水역

꽃무늬파자마들이 자지러진다

 

 


 

 

허청미 시인 / 벚꽃, 그 4월의 배반

 

 

안녕?

단문이구나, 아주 심플해

오늘

어둠을 빨아먹는

너의 음모陰謀를 보았지

내 안에 검은 햇덩이를 뜯어 먹는

저 환장한 식욕을 보았지

복마전 같던 얼음계절

칼바람 앞에 목을 내놓았던

우리는 일식日蝕에 들었었지

안녕,

너의 환한 묵언

사월의 배반

네 음모에 도모하는

나, 아직 소름덩어리

 

 


 

허청미 시인

경기 화성에서 출생. 이화여대 교육심리학과를 졸업. 2002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꽃무늬파자마가 있는 환승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