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솔내 시인 / 전령 외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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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내 시인 / 전령
나무들의 앙상한 포옹이 끝나고 가지 끝에 생긴 열꽃 뾰루지 환하게 터트리고말 홍조가 가렵다 가랫톳 굵어지며 여물린 꽃몸살 오한이 온다 바람에 몸 부풀려 해산기 돌면 빠르고 빠른 피 돌기는 현기증이다 햇빛 낭자한 날 천국의 모습 궁금한이여 여기 이 바람을 보라 양수를 출렁여 어디 눈부시지 않는 봄날 있더냐
야! 봄이다
임솔내 시인 / 십장생 금침金枕
십장생 수 이불을 한 채 들여온 그때부터일 것이다 밤마다 내 배 위에 하늘이 내려오는 일 그 지체 높은 십장생이, 실밥으로 박혀 있던 열 개의 몸짓이 황금폭포처럼 내 안으로 들기 시작했다 열락이다
기골찬 대숲 바람소리 들린다 목이 긴 흰 새와 찔레순 닮은 관을 달고 오방색 구름톱 넘나드는 무구한 것들 온데간데없 이 달이 부풀어 오르는 밤마다 내 배 위엔 새로운 땅이 솟는다 또 열락이다
밤새 대숲 바람소리 세차다 아슴한 그곳 봉과 황의 몸이 닿는 순간 구름보다 더 높은 곳으로 내가 치솟는다 빈 곡신에 시퍼런 썰물이 들이치면 백년 적송이 온몸으로 운다 열 개의 몸짓이 황금폭포로 내 안에 쏟아지는 일 밤마다 내게로 하늘 내려오는 일 신비한 우주 속으로 걸어들어가 절로 십장생이 되는 일
두 눈 질끈 감은 채 밤마다 열리는 마법의, 그 영화로움에 빠져 나는 끊임없이 수만 번씩 바람이는 대숲에 들고 나는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고 또다시 태어난다
십장생 수 이불을 한 채 들여온 그때부터일 것이다 나의 이천 개 열락은
임솔내 시인 / 배꼽
생명을 뽑아낸 깊은 沼 이별을 동의한 물 마른 꼬다리
오래도록 바라보던 눈길의 흔적 하늘을 놓아준 돌항아리처럼 끊어낸 탄력으로 포옥 들어앉은 그곳
귀로를 막은 채 몸속으로 수 십 길 떨어지는 마침표
꽃진 자리 열매 진 자리 이별을 매듭진 지금은 열어볼 수 없는 생명의 반달문
한때는 산통의 소용돌이가 휘돌던 흑백사진으로나 기억되는 거룩해 울고 허무해 울던 울음의 고갱이 아니 텅 비워낸 몸속의 퉁소소리
천상보다 속계를 사랑해 살점을 탈출시킨 문신 지금은 치유된 딱정이 아, 그 작은 부호
아직도 훠이훠이 외로움을 자아내는 어미 애비의 생명이 주름진 그곳
임솔내 시인 / 바다가 되는 일
벽이 굽은 집이였다 언제 폭삭 할지 몰라 매일 밤 유서 들고 잔다며 키들댔다 재개발이 한참 멀었던 그 날맹이 유년의 청년의 강은 거기서 콸콸 흘렀다 흙벽돌 그 집, 감옥같이 뚫린 창으로도 막무가내 들이치는 햇살은 나의 목숨이었다 그리고 내 낡은 서랍 속에 쌓였다 우리의 둥지는 안옥했고 없지만 따뜻했다 그땐 녹색일기가 쓰였고 달처럼 잘 익어갔다 괄약근이 망가져 지금은 비데를 무색케하는 울 엄마 세상사 쏜살같이 흐르거나 말거나 칠십 구에서 멎었다 바다에 이르러 놓아버린 강물 아, 삶은 바다가 되는 일 굽은 벽은 바다로 가는 곡선이었다 나였던 그는 어디에 있을까 그였던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임솔내 시인 / 시詩
불꽃처럼 살다 가슴팍에 번개 한 번 맞고 재가 되다
폭염같은 열정을 주장하다 제 사랑에 갇혀 비릿한 슬픔으로 폭삭 식어 내리다
목숨을 잠시 부려 두고 잘난척 세상을 쏘아보다
피를 데우면서 재가 되는일 가난한 떠돌이 이름 하나
임솔내 시인 / 누가 용의 비늘을 보았는가
속 깊은 대야산 골짜기 너럭바위 등짝에 거친 용 비늘이 옥류의 물소리를 듣고 있다 소(沼)에는 옥구슬 흩뿌린 듯 속이 훤하다 돌단풍 키우며 불멸의 옛길을 아직도 흐른다 억 광년 돌 속에 물속에 들앉아 돌만 깨는 석수의 정 소리 귀가 짠하다 저 아래 무당소(沼)까지 내려가 치성하던 여인의 정한수 위에 어른거려 본다 천일 동안 기다리다 화석으로 남기까지 그 목숨 줄 풀었었다 아직도 천변만화의 비상을 꿈꾸며 너럭바위 햇살처럼 반쯤 눈을 감고 옥류의 물소리를 듣는 늙은 용 한 마리,
그 깊은 전설의 그루터기에 내가 앉은 채 나이테의 턴테이블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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