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임솔내 시인 / 전령 외 5편

파스칼바이런 2025. 8. 3. 15:25

임솔내 시인 / 전령

 

 

나무들의 앙상한 포옹이 끝나고

가지 끝에 생긴 열꽃 뾰루지

환하게 터트리고말 홍조가 가렵다

가랫톳 굵어지며 여물린 꽃몸살 오한이 온다

바람에 몸 부풀려 해산기 돌면

빠르고 빠른 피 돌기는 현기증이다

햇빛 낭자한 날

천국의 모습 궁금한이여 여기 이 바람을 보라

양수를 출렁여

어디 눈부시지 않는 봄날 있더냐

 

야! 봄이다

 

 


 

 

임솔내 시인 / 십장생 금침金枕

 

 

십장생 수 이불을 한 채 들여온

그때부터일 것이다

밤마다 내 배 위에 하늘이 내려오는 일

그 지체 높은 십장생이, 실밥으로 박혀 있던 열 개의  몸짓이

황금폭포처럼 내 안으로 들기 시작했다

열락이다

 

기골찬 대숲 바람소리 들린다

목이 긴 흰 새와 찔레순 닮은 관을 달고

오방색 구름톱 넘나드는 무구한 것들 온데간데없

달이 부풀어 오르는

밤마다 내 배 위엔 새로운 땅이 솟는다

또 열락이다

 

밤새 대숲 바람소리 세차다

아슴한 그곳 봉과 황의 몸이 닿는 순간

구름보다 더 높은 곳으로 내가 치솟는다

빈 곡신에 시퍼런 썰물이 들이치면

백년 적송이 온몸으로 운다

열 개의 몸짓이 황금폭포로 내 안에 쏟아지는 일

밤마다 내게로 하늘 내려오는 일

신비한 우주 속으로 걸어들어가 절로 십장생이 되는 일

 

두 눈 질끈 감은 채

밤마다 열리는 마법의, 그 영화로움에 빠져

나는 끊임없이 수만 번씩 바람이는 대숲에 들고

나는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고 또다시 태어난다

 

십장생 수 이불을 한 채 들여온

그때부터일 것이다

나의 이천 개 열락은

 

 


 

 

임솔내 시인 / 배꼽

 

 

생명을 뽑아낸

깊은 沼

이별을 동의한 물 마른 꼬다리

 

오래도록 바라보던 눈길의 흔적

하늘을 놓아준 돌항아리처럼

끊어낸 탄력으로

포옥 들어앉은 그곳

 

귀로를 막은 채

몸속으로 수 십 길 떨어지는 마침표

 

꽃진 자리

열매 진 자리

이별을 매듭진

지금은 열어볼 수 없는 생명의 반달문

 

한때는 산통의 소용돌이가 휘돌던

흑백사진으로나 기억되는

거룩해 울고 허무해 울던 울음의 고갱이

아니 텅 비워낸 몸속의 퉁소소리

 

천상보다 속계를 사랑해

살점을 탈출시킨 문신

지금은 치유된 딱정이

아, 그 작은 부호

 

아직도 훠이훠이 외로움을 자아내는

어미 애비의 생명이 주름진

그곳

 

 


 

 

임솔내 시인 / 바다가 되는 일

 

 

벽이 굽은 집이였다

언제 폭삭 할지 몰라

매일 밤 유서 들고 잔다며 키들댔다

재개발이 한참 멀었던 그 날맹이

유년의 청년의 강은 거기서 콸콸 흘렀다

흙벽돌 그 집, 감옥같이 뚫린 창으로도

막무가내 들이치는 햇살은 나의 목숨이었다

그리고 내 낡은 서랍 속에 쌓였다

우리의 둥지는 안옥했고 없지만 따뜻했다

그땐 녹색일기가 쓰였고 달처럼 잘 익어갔다

괄약근이 망가져 지금은 비데를 무색케하는 울 엄마

세상사 쏜살같이 흐르거나 말거나 칠십 구에서 멎었다

바다에 이르러 놓아버린 강물

아, 삶은 바다가 되는 일

굽은 벽은 바다로 가는 곡선이었다

나였던 그는 어디에 있을까

그였던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임솔내 시인 / 시詩

 

 

불꽃처럼 살다

가슴팍에 번개 한 번 맞고

재가 되다

 

폭염같은 열정을 주장하다

제 사랑에 갇혀

비릿한 슬픔으로 폭삭 식어 내리다

 

목숨을 잠시 부려 두고

잘난척 세상을 쏘아보다

 

피를 데우면서

재가 되는일

가난한 떠돌이 이름 하나

 

 


 

 

임솔내 시인 / 누가 용의 비늘을 보았는가

 

 

속 깊은 대야산 골짜기

너럭바위 등짝에 거친 용 비늘이

옥류의 물소리를 듣고 있다

소(沼)에는 옥구슬 흩뿌린 듯 속이 훤하다

돌단풍 키우며

불멸의 옛길을 아직도 흐른다

억 광년 돌 속에 물속에 들앉아 돌만 깨는

석수의 정 소리 귀가 짠하다

저 아래 무당소(沼)까지 내려가

치성하던 여인의 정한수 위에 어른거려 본다

천일 동안 기다리다 화석으로 남기까지

그 목숨 줄 풀었었다

아직도 천변만화의 비상을 꿈꾸며

너럭바위 햇살처럼 반쯤 눈을 감고

옥류의 물소리를 듣는 늙은 용 한 마리,

 

그 깊은 전설의 그루터기에 내가 앉은 채

나이테의 턴테이블은 돈다

 

 


 

임솔내 시인

서울 출생. (호: 松香) 중앙대 졸업 및 동대학원 수료. 1999년 《자유문학》으로 등단. 시집 『나 바람피우면 어떨까?』 『나를 바꾼 두 번째 남자』 『잠을 깬 아마존의 함성』 『나뭇잎의 QR코드』 『아마존 그 환승역』 등. 김영랑문학상, 한국문학비평가협회상, 한국서정시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한국시낭송총연합 회장. 문화칼럼니스트. 미당문학회부회장. 불교문예작가회 회원. 국제펜클럽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