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김차순 시인 / 다시오름 외 5편

파스칼바이런 2025. 8. 5. 14:14

김차순 시인 / 다시오름

-이어도

 

 

낮과 밤의 정사 눈 감으면 잊혀질까

찢어진 어망사이 기어든 풀벌레와

겨누던 가슴 내어주고 바다의 집을 그렸다

 

바람빛 구름하늘 비켜선 양문아래

비 소리 요란한 도당 집의 운율 같은

아직도 여물지 못한 내 사랑을 포갰다

 

잡으면 금 새 떠날 핏물 밴 기억 속에

크고 작은 사람의 나이가 차기까지

재워둔 늦 울음 버리고 와랑 와랑 옵서예

 

*오름 : 큰 화산의 옆쪽에 붙어서 생긴 작은 화산

*와랑 와랑 : 이글이글 -제주 방언

*도당 집 : 함석집 -제주 방언

 

 


 

 

김차순 시인 / 날 비飛자 추임새鳥

 

 

바람이 빠지면서 더 넓어진 골목길

청동빛 이마를 드러낸 창들이 열린다

 

호흡을 맞춘 만국기

가을을 탄주한다

 

까치놀 걸터앉았던

날 비飛자 귀거래사

 

가을 창 넘나들며

비파와 아쟁을 켠다

 

바람은 여전히 불고

 

훨훨 나는,

 

나는 새......

 

-《시조미학》 2024. 봄호

 


 

김차순 시인 / 고향에게

 

 

붉은,

고요가 흐른다

탯줄의 기억 아득한

물빛노을 벼리고 달려온 별무리 가득

만삭의 배를 터뜨리며 차오르는

합포만*

 

어미가 된 아이가 팔매질한 물수제비

와락와락 쏟아놓은 봄꽃 엽서로 건너오면

팽팽한 낯선 하루의 꿈의 겨눈다

꽃 사월!

 

기억의 저편을 돌려세운 풀․ 꽃․ 별․ 달

노을 길 술래 잡이

저 홀로 떠다니던

등불 켠 불씨로 남은

아, 환한 날

환한 날

 

*합포만 : 경남 마산의 옛 이름

 

 


 

 

김차순 시인 / 윤오월의 그대 앞에서

 

가까이 들어볼까

멀리서 바라볼까

야멸찬 바람 앞에 구름 한 점 보내라

곡예를 부리던 소리 행궁 길 납시었다

뙤약볕 난장치고 허기진 마술피리

적소의 향을 피워 별 총총 에워싸던

윤오월 짧은 여름밤 소지 한장 올린다

가까이 바라볼까

멀리서 들어볼까

휘령전 주검앞에 마른 피가 흐를 때

무심한 바람이라도 일으키라 하시네

*윤오월: 사도세자의 운명한 달

 

-수원화성 테마시집 『물고을 꽃성』

 

 


 

 

김차순 시인 / 덤 앤 더머

 

 

 한겨울 밤보다 더 긴 경전을 읽는다

 

 복사꽃보다 시인 그 시절을 돌아보며 질긴 마음에 묶여 눈 감은 하늘아래 바람이 미소를 지우고 산의 몸통이 잘렸다 쥘부채 너름새 어린 봄 강구 항에서 그 많던 까마귀 떼는 어디로 갔을까 하루치 발을 모으듯 툭 던진 말 바람 한 잎 숲속의 아가미 마음밭의 자물쇠 딱! 복사꽃 먹는 오후 서 있는 詩 넉살도 참, 슬픔의 뒤편 꽃발 꽃발 당신, 원본인가요*

 

 무소의 뿔이 된 떼루아**

 네피림***의 발효여!

 

*스물두 분의 시조 시조집 제목: 복사꽃보다 시인(옥영숙) 그 시절을 돌아보며(문석주) 질긴 마음에 묶여 (이선중) 눈 감은 하 늘 아래(김연동) 바람이 미소를 지우고(김양희) 산의 몸통이 잘렸다(서숙희) 쥘부채 너름새(이순권) 어린 봄(김영재) 강구항에서 (김석이) 그 많던 까마귀 떼는 어디로 갔을까(유헌) 하루치 발을 모으듯(정수자) 툭 던진 말(박홍재) 바람 한 잎(유재영) 숲속의 아가미(배경희) 마음밭의 자물쇠(우은숙) 딱!(강상돈) 복사꽃 먹는 오후(임성구) 서 있는 詩(신필영) 넉살도 참, (윤금초) 슬픔의 뒤편 (김미정) 꼿발, 꽃발(김혜경) 당신, 원본인가요(이광)

 

**좋은 포도밭

 

***노아 홍수 이후 등장한 거인(민수기 13:33)

 

-《시조미학》2023. 봄호

 

 


 

 

김차순 시인 / 버킷리스트 옴니버스 1.

 

 

 바람이 빠져나간 오후 한나절

 

 빨간 전기 주전자 스위치를 꽂는다. 불이 들어와 금박테두리 나비무늬 찻잔을 데우고 새초롬한 초겨울 바람을 닮은 차를 우린다. 금방이라도 삼킬 듯 그렁대던 목소리 빠져나가고 물이 든 티백tea bag의 벽곡점 아래 묻힌 날갯짓, "반성은 하되 후회는 하지 말 것, 따끈한 차 한 잔이면 족할 일... 우두망찰 바라던,

 

 콸콸한 목울대를 감싼 다디단 비움 본다.

 

 열 온탕 온 냉탕 반신욕에 족탕이라

 쐐기로 박힌 옹이 생으로 우리다가

 벌겋게 날 선 실핏줄 귀동냥하느라고

 바빴던 하루해 되로 주고 말로 받아

 갈지자로 져 나르던 갱 물을 비운다

 

 "비욱 채우는 일은

 말캉한 덤 앤 더머”

 

 "한이 혼을 마주하듯 노래한"다는

 '진성'의 '태클을 걸지 마'라는 반전의

 동굴을 훅, 빠져나온 벼린 날을 빚는다

 

-《시조미학》 2022. 봄호

 

 


 

김차순 시인

1957년 경남 마산 출생. 창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2001년 <시조문학> 신인상 등단. 18년만에 시조집 <지금은 부재중> 발간. 한국시조시인협회, 경남시조시인협회, 오늘의시조시인회의, 열린시학회 회원. 시조문학 신인상(2001년). 현재 기독교방송<c채널 앱라디오 카라멜>에서 '시조엘의 길 위의 냉수마찰'과 잠언으로 여는 세상> 프로그램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