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정 시인 / 문득 그리운 날에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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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정 시인 / 문득 그리운 날에
나의 젊음은 마흔 무렵이었고 몇 해가 지난 지금 사비나의 중산모자가 스스로에게 의미가 되듯 내 젊음도 중산모자의 증언을 따라 멀어졌다 어린 날의 추억은 불현듯 나타나 현재를 지배하곤한다 한두 번의 젊음이 불쑥 다가올 테지만 바라보고 있기엔 이미 충분히 나이 들었다 시간은 돌고 도는 것이라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바늘의 속성이지만 인생의 바늘은 어디를 떠돌아다니고 있는가 모자는 제네바로 포장지와 리본들은 팔레르모로 보내버리자 속옷은 시골마을 조용한 산중에 셔츠는 작은 도시의 붐비는 거리에 벗어 버리자 완전히 홀가분해지면 시침과 분침이 다시 만나 몸을 섞고 그때 기쁘게 건전지를 빼버리자 다시 넣어도 어떠랴 그 뿌리는 이제 계속 함께일지니 나는 영원히 젊으리라 -시집 <시네 마테리아의 향연>에서
김대정 시인 / 바람꽃
봄이 오면 안개 처럼 피어 오르는 그리움이 있다
바람이 불면 몸을 흔들어 반겨주는 미소띤 얼굴의 당신
변하지 않는 수수한 모습으로 기다림을 먹고 살겠지요
봄바람 불어 그리움이 피어나면 당신을 만나러 계곡을 향해 달려가리라
눈물 되어 흘러 꿈을 꾸는 당신은
봄바람 드나 드는 바위틈에 피어난 하얀 그리움
김대정 시인 / 징검다리
징검다리 하나 건널 때 돌 사이로 세월이 흘러간다
어느날 돌다리 건너다 보니 송사리가 어릴 적 철없이 뛰어 놀던 내모습 같구나
중간 돌다리 건너다 보니 쏘가리가 세월을 거슬러 올라 가는구나 젊었을 때는 세상이 다 내것처럼 두려울게 없었지
마지막 돌다리 건너다 보니 흘러 들어온 물이 내 이마를 보는듯 주름이 찌글찌글 저만치 앞서 갈 세월이 보이는 구나
돌다리를 다 건너가 보니 앞에서 하얀 억새들이 손짓을 하며 반기는구나
김대정 시인 / 주전자
난로 위에 올려 졌을 때는 많은 생각에 잠겼다
수수하고 멋스럽게 보이면서 커피 맛을 생각 했고 생강차를 생각 했고 따뜻한 시간도 함께 했다
당신과 함께 기차를 타고 차창을 바라보며 가을 겆이가 끝난 들판을 보고 여행을 하듯 추억으로 달릴 때
마지막 종착역 플랫폼에서 하얀 연기를 품어내고 기적소리를 내며 도착을 알리면
찻 잔에 풀어진 추억과 사랑은 향기로운 커피 향에 바이올린의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살며시 눈을 감게 한다.
김대정 시인 / 억새와 바람
그대는 보이지 않은 사랑으로 내게 다가와 내 맘을 흔들어 놓고 가버렸어요
이제 그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그대가 나를 기억못해도 난 항상 그대의 손길을 그리워하며 그대를 기다려요
존재하지 않은 그림자 처럼 그냥 스치는 사랑이라도 괜찮아요 그대 상냥한 손길로 저를 어루만져 주세요
빛나는 머리결 바람으로 일렁이는 나날 나는 하얀 그리움을 가슴에 담고 그대를 기다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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