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조수림 시인 / 욕의 푸가 외 3편

파스칼바이런 2025. 8. 9. 18:28

조수림 시인 / 욕의 푸가

-첼란에게 꼬리를 밟히다

 

 

 그래서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다 수도꼭지를 비틀자 욕이 흘러나오다 바가지로 욕을 퍼 목욕을 하다 입에 담지 못할 욕으로 밥을 지어 먹다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욕이 넘쳐흘러 에셔의 계단을 구르다 계단에 갇힌 돼지들이 떠내려가다 날 것과 익힌 것들이 짝을 지어 떠내려가다 너의 로마가 깊은 모욕에 잠기다

 

 욕 위를 떠도는 노아의 방주

 바닥에 구멍이 났다고

 하늘에 대고

 욕을

 욕을 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다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욕이 흘러나오다 바가지로 욕을 퍼 목욕을 하고 쌍시옷으로 버석거리는 머리를 감다 담지 못할 욕으로 지은 밥을 입에 우겨넣다 정지된 식탁에서 눈을 부릅뜨다 수도꼭지에서 욕이 넘쳐 에셔의 계단을 구르다 배부른 돼지들이 잠든 채 떠내려가다 날 것과 익힌 것들이 흐르는 욕 위에 자리를 펴고 교미하다 부패된 것들이 욕에 풀어지다 참을 수 없는 로마가 모욕에 잠기다

 

 욕 위를 떠도는 노아의 방주

 구멍 난 바닥으로 욕이 새어들다

 코마에 빠진 하늘에 대고

 욕을

 욕을 하다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다 비틀린 수도꼭지에서 욕이 흐르다 바가지로 욕을 퍼 목욕을 하다 입에 담지 못할 욕으로 밥을 지어먹다 식탁에 정지된 채 삼십 초에 한 번 씩 눈을 깜박이다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욕이 흘러넘치다 계단을 구르는 돼지들이 잠든 채 떠내려가다 날 것과 익힌 것들이 부패의 냄새를 피우다 부패된 것들과 내통한 사냥개가 욕에 풀어지다

 

 욕 위를 떠도는 노아의 방주

 구멍 낸 바닥으로 욕이 들어온다고

 코마에 빠진 하늘에 대고 욕을 해대는

 미친 비둘기

 

 Terra incognita*

 

* 미지의 땅

 

 


 

 

조수림 시인 / 조씨

 

 

 땅 속에서 뿌리 깊은 木棺을 캐낸다. 달리아 구근들이 끌려 나온다. 관에서 꺼내진 조씨가 嬰安室 乳體보관함으로 옮겨진다. 일정기간 저온숙성을 거쳐야 생명을 얻을 수 있다. 구근처럼.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조씨의 탄생을 기다리며 향을 피우고 국화꽃을 올려놓는다. 그들은 파란만장할 조씨의 삶을 예견하며 눈물을 흘린다. 가장 가슴 아픈 척하는 건 조씨의 자식으로 예정된 자들.

 바이털 사인이 춤추기 시작한다. 香年 97세의 조씨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숨을 몰아쉰다. 첫눈을 뜬 조씨는 흰 벽에 똥을 칠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고상한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스물네 살, 대학원에서 兩者力學을 배우다.

스무 살, 마지막 연애를 걸다.

열세 살, 급격한 성호르몬의 변화로 갱년기 우울증을 앓다.

실어증에 걸린 그 해 겨울, 기저귀 채워져 찬 바닥에 버려지다.)

 

 조씨가 神生兒室에서 하얀 포대기에 싸여 죽음의 순서를 기다린다. 간호사가 조씨의 보호자를 호명 한다. 아버지가 활짝 웃으며 조씨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마음껏 죽음을 맛봐라.

 의사가 벌어진 자궁으로 조씨를 밀어 넣기 시작한다. 발부터 미끄러져 들어가야 하는 죽음의 규칙이다.

 한때 조씨의 부모였던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나눈다. 정자와 난자로 분해된 조씨가 그들의 고환과 난소에서 영원히 소멸된다.

 

 


 

 

조수림 시인 / 녹

 

 

녹슨 못이 손바닥에 박히고부터

눈물샘에서 녹물이 흘러나오는 거였다

눈물을 받아 증류하면

붉은 녹이 삼각 플라스크 바닥에 남는 거였다

 

날개 짓을 익히기 전인데

슬슬 날개부터 녹슬기 시작하는 거였다

잠자리처럼 날아올라야 하는데

골조骨組가 부식되기 시작하는 거였다

 

나무십자가 위에서 산화酸化된다는 게

얼마나 목마른 일인 줄 아니?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은 게

몸에 슬은 녹인 걸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조수림 시인 / 이상(異常)

-고리

 

 

 길을 잃을까 두려워 아침에 남긴 빵을 부스러뜨린다 새가 먹어치울까 걱정할 필요 없다 어차피 새는 내일 잡아먹고 왔으니까 지긋지긋하다 바깥으로 한번 뛰어내려 볼까 벗어나려면 혀를 잘라야 한다네

 

 마취에서 깨어난다 잘린 혀를 창구멍 삼아 몸의 안과 거죽을 뒤집어본다 오색영롱한 내장들이 주렁주렁 달려 나와 밤새 수술은 잘 끝나셨냐고 수선스럽게 인사한다 뒤집혀져 뒤통수를 처음 마주보게 된 나의 입술 굽이치는 긴 머리카락에 대고 입술을 비빈다 그동안 안녕하셨냐고 혀가 없는 입맞춤이 맛이 없다

 

 잘린 혀가 포르말린에 절여지고 있다 적출물 보관실 열려진 창문 틈 새 한 마리 포르르 날아와 순식간에 날름 혀를 집어 삼킨다 소스라치는 나의 입술 날름 새를 삼킨다 입술 속에 가늘고 긴 보라색 혀가 돋아난다 돋아난 새 혀는 나의 입술이 날름 삼킨 새의 혀인가 새가 날름 삼킨 포르말린에 절여진 내 혀인가

 

 길을 잃을까 두려워 아침에 남긴 빵을 부스러뜨린다 새가 먹어치울까 걱정할 필요 없다 어차피 새는 내일 잡아먹고 왔으니까 지긋지긋하다 바깥으로 한번 뛰어내려 볼까 벗어나려면 혀를 잘라야 한다네 아마

 

 


 

조수림 시인

1967년 서울에서 출생.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0년 《시와 반시》 신인상을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