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문성희 시인(고령) / 소망 외 3편

파스칼바이런 2025. 8. 10. 21:08

문성희 시인(고령) / 소망

 

 

깃털구름 뽑혀진 자리 먹구름이 문지른다

비를 뿌리는 내 그리움에

눈이 먼 사랑은 조급증만 더하는데도

깃털 가슴 그대에게 내어줄 자리는 없다

어렵고 서러운 게 사랑이라 했던가

그리움에 어느 절집 오르는 길가

홑이불 같은 꽃무릇에 널어두었더니

행여 먼 길 떠났다 돌아와 지친 그대

좁은 가슴 넓게 펴보겠다고 후회가 가득

 

그렇다 한들 나 그대에게

내어줄 자리, 더는 준비하지 않겠다

 

 


 

 

문성희 시인(고령) / 잠행(潛行)

 

 

야산에 오른 창공이라면

별들이라도 속삭이게 해야지

풀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에

눈물얼룩 비출게 무어야

 

정상에 부는 바람이라면

상수리나무 우듬지라도 흔들어야지

부리 흠뻑 적신 땀방울이 무어야

 

내 가슴 그리움으로 가득 채워놓고

가로등 불빛 사이로 떠난 그대라면

이 밤

영혼 안식처를 찾아 유영하진 말아야지

 

불나방처럼 거리를 거닐건 무어야

이제 가거라,

장난감 같은 너의 집으로

 

 


 

 

문성희 시인(고령) / 토함산 눈(雪)

 

 

알몸 여인으로 고운 선을 드러내고

누워있는 토함산 솔잎에 학들이 내려앉았다

동해의 찬바람이 어슬렁거리며 몸을 탐하면

벌거벗은 병졸들이 일렬로 섰다.

 

푸르스름한 친구 얼굴에 화기가 돌고

구름에 숨었던 태양이 얼굴을 내밀면

후드득 떨어지는 눈송이에 놀란 학 한 마리

땅으로 내려앉는다.

 

말없는 돌부처의 야릇한 미소에

만남과 헤어짐도 필연인 것을

잊고 살아온 세월이 화살같이 지났지만

언제나 멋진 인생 포기하지 않았다.

 

벌거벗은 병졸이 일렬로 선

고운선 드러내고 누워있는 토함산 솔잎에

오늘도 한 마리 학이 내려앉는다.

멋진 인생 끝나지 않았다고

 

<성주 보광사에서 감포 법회를 다녀오며 겨울 토함산을 노래하다>

 

 


 

 

문성희 시인(고령) / 머리를 감다

 

 

한낮 동안 꺼져있던 골목의 갓등이

해거름이면 머리를 감는다

어둠에 행구는 그의 머리는

거품을 뭉게뭉게 하늘로 올려 부풀리는 별들

검은 머리 내려 박고 씻는 묵은 때

고요한 침묵의 바람이 말린다

어디선가 오래전 떠난 맑은 영혼

귓가 맴돌며 거꾸로 흐르는 피에

먼 성당의 종소리가 섞여진다

되도록 그대여 몸부림은 처절하라

돌아설 수 없는 아쉬움이 파도라면

버티고선 바위라도 치고 가라

밀려왔다 밀려가는 그리웠던 순간들

희망빛 머릿결로 출렁인다

 

 


 

문성희 시인(고령)

1961년 경북 고령 출생. 2013년 ≪문장≫ 시 부문 신인상, ≪한국시학≫ 시 부문 신인상 수상. 한국예인문학작가상 수상. 국제펜한국본부, 대구문인협회 이사. 국제펜대구지역위원회 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한국시학회, 고령문협 회원. 문장작가회 부회장. 대구시인협회 간사. 죽순문학회 사무국장. 안심성봉요양원 원장. 시집 『가슴에 묻어둔 침묵』. 『가슴에 묻어둔 외침』. 수필집 『열린수필 6』 공저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