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 시인 / 여름 숲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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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 시인 / 여름 숲
당신은 슬픈 것이 많았다 나무 베란다에 바람이, 햇볕이 널려있다 나무 베란다를 맨발로 걸으면 당신의 몸으로 나무의 뼈가 올라갔다 어딘가에서 딱따구리가 날아와 건너편 후박나무 기둥을 두드렸다 잎이 떨어졌다 당신이 베란다의 난간을 훌쩍 넘어 후박나무 옆을 걸어갔다 풀이 자라서 숨겨진 길을 찾았다 당신은 살면서 달아나고 싶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누군가의 굳은 발자국이 당신의 발과 같았다 당신은 여름 숲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계간 『상징학연구소』 (2023년 여름호)
이강 시인 / 기형도 2
한 무리 친구들의 촉발된 호기심이 슥슥 삭삭 그의 머릿속을 헤적일 적에 도서관 옆 철제 난간 위에 양손으로 턱을 받히고 발아래 비원 풍경을 자욱 누르다 “가을은 참 깊다” “……” “시란 본질적으로 낮은 목소리여서 누군가 버린 아픔을 주워 담는 일이지“ 자분자분 속삭이는 돌올한 그의 언어는 상상력의 굴레에 갇히지 않은 날것으로 비렸다 덧붙인 응결된 말 “존재하지 않는 존재의 씨앗을 틔워, 꿈결 따라 깃을 치는 투명한 죽음의 각주 같은 것“ 그는, 언어라는 형식의 외피를 벗고 행간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비로소 시가 꼴을 갖춘다고 했다
-시집 『기형도』 한국문연,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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