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서연 시인 / 빨래를 걷다가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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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연 시인 / 빨래를 걷다가
육체는 방안에 놓고 영혼만 하늘에 걸어놓은 막 절정에서 떨어져 죽음의 문턱으로 쓰러진 빨랫줄에 매달려 가죽으로 걸려 있는 빨래들 머리는 하늘 어딘가에 붙어 영혼을 널고 있을 아세팔*의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 심장과 몸통과 사지가 따로 떨어져 분해되었을 뿐 사람의 흔적 피카소의 그림이다 몸이 온전히 하나로 묶어 달고 다니기에는 머리도 숨쉬기도 너무나 벅찬 세상 신의 영역을 훔쳐 한순간이라도 정신을 놓는다 속고 속이는 음흉한 곳에서는 살지 못하는 가슴이 깨끗이 씻긴 오르가슴 하늘을 사모한 관능의 정신들만 피울 수 있는 순간 캄캄하도록 저무는 저들은 죽음의 꽃이다 펄펄 끓는 태양의 온기를 온몸에 품은 영원히 썩지 않는 꽃이다 과거가 통째로 날아간 듯 널브러진 흔적을 거두고 새로 태어난 근력으로 일어서는 빨래들 흐트러진 정신을 바삭바삭 줍는다 내일 저들은 하늘에 걸려 있는 머리와 각기 따로 떨어진 사지와 몸들을 제자리에 끼워 맞추고 감쪽같이 가볍게 날아 세상으로 들어갈 것이다
*아세팔:그리스어로 머리가 없는 사람이란 뜻 / 마송의 그림에서 차용
웹진 『시인광장』 2023년 7월호 발표
명서연 시인 / 봄이 쪼그라들었다
꽃불을 놓았어 언젠가 나도 한 번은 터지고 싶었거든 한 방 터지기 위해 움츠렸고 움츠렸기에 태울 수 있었지 주먹손이 되고 싶었어 가장 화려한 꽃을 피우기 위해 바람은 산맥을 넘어 모두 나를 향해 불어오고 나는 바람에 안겨 춤을 추었지 황제의 손바닥 안에서 춤추는 조비연이었어 나는 그때 가장 큰 꽃이 되었지 꽃샘추위로 금세 흔들렸어 철 모르고 눈을 뜬 불장난이었는지 치솟다가 부서진 불인지 활짝 피었다가 지고 만 화무십일홍 내가 나에게 져서 우는 거야 저항하다 쓰러진 꽃불 꺼지기 위해 부풀었는지 부풀어서 꺼진 것인지 몰라 언제 내가 제대로 부풀린 적은 있었나 기억이 말라가도록 부풀기 무섭게 순간 시들었잖아 무거웠던 몸이 가벼워졌나 나는 나를 버렸어 내 그림자까지 버렸지 버린 것이 많아서 가벼워졌는지 가벼워진 것도 모르겠어 한 번 활짝 피고 열 번 시들었어 가슴까지 물들었던 분홍을 지웠어 흐르는 분홍의 그림자까지 지웠지 화려하게 탔어 타인은 냄새까지 숯검정이래 냄새조차 까맣게 쪼그라들었지만 불씨는 언제든 되살아날 거야
-계간 『열린시학』 2023년 여름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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