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장병훈 시인 / 과녁 외 6편

파스칼바이런 2025. 8. 11. 17:25

장병훈 시인 / 과녁

 

 

 은해사 돌구멍절로 가다 장맛비에 새끼를 데리고 온 한쌍의 꿩을 보았다 순간 기름진 고기를 상상하며 다부지 게 주워 든 몇 개의 돌멩이, 꿩부부는 뻣뻣한 과녁처럼 앞을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섭심을 놓아버린 가여운 중 생, 불끈 힘 좋은 살기로 던진 돌멩이가 장끼의 꽁지깃 하나 가볍게 떨구고 허공으로 튕겨 올랐다 대신, 과녁을 비껴간 돌멩이 하나, 내 심장 깊이 명중되었다

 

 장맛비가 죽비처럼 등줄기를 때리는,

 

 


 

 

장병훈 시인 / 하늘 납골당

 

 

고품격 프리미엄 납골당이 있네

꿈에그린, e편한세상, 푸르지오

납골들은 모두

아카데미스위트 꿈꾸네

콘크리트 납골당 비추는 수믄등 아래

비밀번호 잃은 치매 든 납골 하나

허무하게 무너져있네

우리집은 저기 하늘 납골당이라오

늦은 시각 성묘객들이

잘 마른 납골을 걱정하네

어떤 이는 젯밥을 차려주고

어떤 이는 향을 피우네

대도시 역세권 공중은

칸칸 납골당

미궁으로 높고 길쭉한

콘크리트함들이 허공에 걸려있네

 

 


 

 

장병훈 시인 / 금싸라기 참외와 시

 

 

병훈아, 시집 부칫다민서,

니도 주소 쫌 찍어보거래이

내가 농사 진 참외 쬐끔 부치 주꾸마

 

어이쿠, 영태야

더운 날, 비닐하우스서 애지중지한

전국에서 가장 돈 된다는

금싸라기 성주참외를 거저 얻어 묵어서 우짜노

(그것도 돈 안 되는 시집 한 권, 달랑 받고서는)

 

아이다. 친구야

니도 뼈를 녹하 가지고 맹글은 시집인데,

참외 농사나 글 농사나

잠 못 자고 맹글은 거는 똑같은기라

 

그래, 그래 얘기 해 주니 고맙데이

전국에서 제일도 맛있다는 성주 참외

그것도 영태 니가 특별히 보내준

금싸라기 참외 묵고,

내 글밭에도 금싸라기 시어들로 가득 채워 보꾸마

 

영태야 그리고 니한테도

농사 일이 힘들 때 마

니가 맹글은 참외보다는

밉게 생기고 맛이 덜한 시편들이나마

위로가 되는 말씀들이 숨어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와 이리 신경이 자꾸 가는지 모르겠는기라

 

―『불교문예』 2013년 가을호

 

 


 

 

장병훈 시인 / 시월 2

 

 

청도의 감들은 씨를 죽였다

씨 없는 감들은 가볍다

다른 곳에 태어날 필요도 없다

나도 그만 그것을 떼어버릴까

그러면 더 가벼워질까

제 몸의 ‘ㅂ’을 떼어버린 시월도

시월시월 가볍다

 

씨알머리 없이 헤헤거리며 가을을 횡단한다

더 가벼워지기 위해 살을 버리는 가을의 충혈

씨를 털어버린 백발의 억새들이

백만 개의 빗자루로 하늘을 쓸고 있다

 

-시집 「붉다」 2013년 황금우물

 

 


 

 

2008년 <심상> 하반기 신인상 당선 작품

장병훈 시인 / 거룩한 안주

 

 

제삿날 오랜만에 일찍 모인 형제들 (시간 죽이러)

호프집에나 가볼까(경건해야지, 애비 제사 전에 술이라니)

타박하시던 울 엄매(술 좋아 하시던 당신 탓이려니)

그래도 요즘 세태 따라야지 눈 감고 모르는 척 울 엄매

 

안주로 나온 새우들 물끄러미 바라보다

저 딱딱한 것도 한 때 태평양을 유유히 즐기며

자유 만끽하던 한 작은 물결이었을거야

(아니, 바다의 무게 감당 못한 작은 파도였을지 몰라)

등이 휜 새우 씹으며 형제들 노랠 불렀네

공테프 찍찍대는 소리 흘러 갔었네

등이 휠 것 같은 삶이여 봄날은 잘도 갔었네

(그랬지 임종 날 아버지도 저렇게 등이 휜 새우 같았지)

자식들에게 생의 속살 죄다 내 준 채

허무의 등, 휘어져 떠난 아버지

 

제삿날 초저녁부터 우리 형제

등이 휜 아버지를 씹고 있었네

 

 


 

 

장병훈 시인 / 길 위의 명상

 

 

 19번 국도, 무진장소방서와 장계고물상계량소 그리고 장계하수종말처리장 팻말이 연이어 보인다 재미있는 이름의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다가 순식간에 뒷골을 치는 화두 하나!

 

 오호라, 저 길 위에 열반의 수행방법이 있었구나 무진장소방서에서 무진장 눌러붙은 세속의 불을 고집멸도苦集滅道로 다스리고, 장계고물상계량소에서 내 영혼의 참된 무게를 달아보자 황홀하고도 서늘한 죄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썩은 놈은 장계하수종말처리장으로 가라는 것이겠지 길 위에서 불현듯 불쑥불쑥 나타나는 지지리도 못난 이름이라 여겼던 하수종말처리장, 지금에야 생각하니 영혼의 썩은 물 걸러내고 부활을 약속하는 성소일까

 

 장수군 장계면에서 진안으로 가는 19번 국도에서 생천生天의 도를 만났네

 

 


 

 

장병훈 시인 / 뿌리의 교신

 

 

하늘길을 낸 나무들의 행렬

세월을 담금질한 시원始原의 바람

나무들의 몸 읽고 간다

나무는 제 몸이 나무다

나무는 제 영혼이 나무다

나무에 등을 기댄다

나무의 맑은 말씀 내 혈관을 타고 온다

나의 뿌리들, 나무 뿌리와 얽힌다

하늘의 길은 뿌리의 길

땅바닥에 발을 딛고 처음 하늘을 본다

묵언수행하는 나무 나무 나무들

땅 밑으로 혈관들, 은밀한 교신

꽃 피고 바람부는 까닭을

맑은 수액으로 타전한다

나무와 나

서로의 가슴에 돋을새김 남긴다

 

 


 

장병훈 시인

1962년 경북 성주 출생,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 2006년 《현대시문학》 추천완료. 2008년 『심상』신인상 수상. 시집 『붉다』. 동인시집 『급습』. 현재 <詩作나무>동인, 현대불교문인협회 회원. 선화여고 국어교사로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