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천성옥 시인 / 드라이브 외 6편

파스칼바이런 2025. 8. 11. 17:32

천성옥 시인 / 드라이브

 

 

김선생의 문자엔

마스크는 필수, 선그라스는 선택,

추신: 춘심이는 반드시 꼬드겨 오길

ㅎㅎㅎ 미세먼지 가득한 주말 오후

 

배꼽 빠지는 문자가 왔다

 

 


 

 

천성옥 시인 / 마당 한 구석

 

 

시간을 삭혀 놓은

된장항아리

 

 


 

 

천성옥 시인 / 바람, 그리고 바람

 

 

 너무 많다 허용하고 싶지 않은 바람이 오늘이 현무암 모서리에 기생하고 있었다 손가락을 담은 장갑 속에도 바늘이 지나간 자리에도 성산일출봉을 바라보는 눈에도 바람 또 바람이 일고 있었다

 

 대나무 숲이라고 일컬어 보았다 귓가에 이명이 사각거리며 울고 있었다 숲의 통기성이 합창이 탁월하다 악보 없는 도돌이표가 반복되고 이불속에 밤을 재워두었다 숨소리를 따라 나오는 콧김까지 데우려

 

 객실이 초대하지 않은 네가 침입하고 입구가 폐를 공격하고 젖어들었다 바람을 묻어 두었다 목젖이 위가 충혈되고 몸에서 이는 바람이 배를 흔들었고 기침이 폐까지 흔들었지 시트는 식음을 거부하고 여행을 중단시키고

 

 뿌리까지 흔들고 떠났다 몸속에서 꿈틀대는 크고 작은 바람들이 코로나를 만나기 한 달 전에

 

 


 

 

천성옥 시인 / 감정쓰레기통

 

 

없습니다.

그녀는 숨이 막혀요.

쓰레기통이

 

버려야할 쓰레기들이 양손에,

그리고 입안에 가득한데

 

호주머니 속에 담아두기로 했습니다.

 

바스락거리는 두둑하게 부풀어 오른, ㄴ

스타일을 죽이는 귀찮은 쓰레기는

어디에 버려야할지 고민입니다

 

버린다는 것은 滿滿입니다

 

비움의 장소를 찾아 헤매다가, 해산할 곳을 찾지 못한 발걸음이,

현관문에 들어섭니다. 집안에도 쓰레기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숨이 막힌 비움이 비통해 하는

 

그녀는 감정쓰레기통을 발견했고, 눈치를 살피며 모아둔 쓰레기를

하나씩 비워냅니다.

 

오버히트,

작은 쓰레기통이 급발진을 일으켰고, 오물이 그녀를 향해 역류하기

시작했다

 

시행착・오.

비참을 껴안으며, 그녀를 받아줄 큰 그릇이 필요했어요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포용력 거대해진다는 것이다.

쓰레기통이 말없이 위장을 채워갈 때, 한 눈금 더 다정해지고

그녀가 활짝 웃을 수 있다는

 

오늘 은밀해진 쓰레기통 하나를 준비했습니다. 그녀가 평생을

버려도 넘치지 않을 초대형으로

 

 


 

 

천성옥 시인 / 나 그리고 나

 

 

앞을 볼 수 없어요.

빗방울 속눈썹을 흔드는 것도 아닌데

충혈된 눈은 어제와 오늘의 중심에 있어요.

 

이별상자에 구겨버린 나와 남겨진 나 사이에

해결되지 못한 내가 있나봐요

습관처럼 뒷면을 보는 나를 생각해요

 

바람의 손가락에 쥐어주고 돌아섰는데

놓지 못한 빈손이 나를 찾는지

비명의 그림자가 얼굴위로 서성여요

 

비움의 정면은 깃털인줄 알았는데

온 몸을 짓누르는 쇠사슬에 묶여서

탈진한 나는 넋이 나가 있어요.

 

얼룩진 뒷모습은 누가 닦아주나요

그리움에 흐느끼는 그림자를 누가 위로 하나요

조금씩 겪어내는 적응이라는 글자가 토닥여 줄 거야

 

이별의 강 건너편에서

떠나버린 내가 남겨진 내게 안부를 전해오네요.

과일의 당도가 높아지듯 내면의 성숙을 응원한다고

 

 


 

 

천성옥 시인 / 누구인가요

 

22년 6월 6일

비가 내렸다.

모두가 반기는 비

저수지 바닥이 거북등이 되었다는데

빗방울이 좀 더 촉촉하게 사랑해 줄 수 없나?

갈증으로 타는 가슴을 시원스럽게 적셔줬으면 좋겠다.

아니, 소량이라도 사랑을 베풀어 주니 다행이고 감사하다.

 

22년 8월 8일

물 폭탄이 내린다.

하늘 위의 물이 땅을 지배하려는 듯

누가 저 뚫린 구멍을 막아줄까요

역류하는 땅의 물들에게 할 말을 잃고

세워진 까치발들이 황토물 속에서 길을 찾는다.

싱크홀과 입을 벌린 맨홀은 누가 덮을까요.

이젠 여기서 멈춰주세요

저기 생명이 꺼져가고 있어요

급류에 떠내려가는 꽃눈이 있고요

반지하를 탈출 못 한 비명조차 없어요

주차장에 수장된 40대는 어찌해야 하나요

맨홀이 삼켜버린 50대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요

찢겨진 상처들은 무엇으로 꿰매고 치료해야 하나요

물 폭탄을 던진 이는 누구일까요

싱크홀을 파 놓은 사람을 아시나요

반지하 방에 물을 댄 사람은 누구인가요

맨홀뚜껑을 열어놓은 사람을 아시나요

환경을 파괴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가해자는 바로 우리 모두랍니다

환경파괴범 우리

 

 


 

 

천성옥 시인 / 마침표위에 누워

 

 

바늘이 아니면서 비명을 찌르는

 

벗겨진 불빛이, 손톱의 쌀눈처럼

 

줄다리기다 시선과 별자리와

 

별자리가 손이 엮여있어

 

지우개로 별을 지워낸 것처럼

 

무결점의 하늘이 보인다

 

은색 화면을 남긴 마침표는 몸을 숨긴다

 

'앗, 안보여요'

 

푸른 하늘이 쏟아져 내린다

 

누운 채로 흠뻑 젖어든다 빗물처럼

 

시트 속에서 흥건하다

 

'내가 보이나요'

 

 


 

천성옥 시인

1960년 충남 논산 출생. 2016년 《시와 세계》로 등단. 시집 『화요일의 화』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