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재 시인 / 보름달 외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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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재 시인 / 보름달
수박 한 덩이 품고 있는 우물
같은
여자는
자꾸 수박을 먹지 말라고 한다
이동재 시인 / 내가 나를 보니
보름달은 제 스스로 허무의 배를 짓고
바다를 미끄러져 옵니다
조금 아주 조금 전 저녁해는 그리움의 배를 불사르며
바다를 미끄러져 갔습니다
이동재 시인 / 소들은 다 어디로 갔나
저 물오른 무논을 갈아엎고 싱싱한 대지를 뒤엎던 고삐 풀린 소들은 어디로 갔나 해마다 봄이면 겨우내 여물 씹던 외양간을 박차고 나와 하루 종일 쟁기질을 하던 한국의 그 황소들은 다 어디로 갔나 겨우내 이불 속에서 여인네의 젖가슴을 주무르던 두 손으로 그 쟁기 힘차게 부여잡고 한 해를 호령하던 그 당당하던 한국의 사내들은 또 어디로 갔나 다 어디로 가버렸나
이동재 시인 / 근무일지
내가 시집이나 소설집을 낸다는 건 언감생심 베스트셀러는 고사하고 하찮은 상업적 유통도 아니고 사소한 국가기록물을 생산하는 일 꾸역꾸역 아무도 보지 않는 시집을 내고 소설집을 내는 건 그냥 이 세상 근무일지 같은 거
이동재 시인 / 시인의 술자리
김이박, 남자 시인 셋이서 양꼬치를 안주로 술을 마시다가 이 김형! 거, 양하고 해봤어? 김 으음, 박 양이나 김 양하고는 해봤지. 박 이사람들 큰일 날 소리 하네. 당신들도 유명해지려고 그래. 그 노털상 후보처럼? 김 그래, 우린 역시 양보다는 질이지! 이박-!!
이동재 시인 / 장수시대
하루에도 골백번 양아치모드에서 효자모드로 잡년모드에서 효부모드로
아버님 어머님 오래오래 사셔요
하루에도 또 수백번 효자모드에서 양아치모드로 효부모드에서 잡년모드로
꼰대들이 쓸데없이 목숨만 길어져서 뭐해
이동재 시인 / 이런 젠장, 어머니
이런 젠장 막내아들 교수 만들고 큰 소리 좀 치려 했는데 교수 되지마자 해직되고 이런 젠장 며느리 앞에 기 좀 펴나 했는데 이런 젠장 염치없어 기도 못 펴고 이런 젠장 짜장면 하나도 입에 들어가는 거 죄스러워 이런 젠장 집 한편 구석에 찌그러져 구십 평생 이런 젠장 조상님 뵐 면목 없어 일찍 세상도 못 뜨고 이런 젠장 널 낳고 내가 미역국도 못 먹었다 이런 젠장 뭔 놈의 세상이 이 모양이냐 이런 젠장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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