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언주 시인 / 열병식 외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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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언주 시인 / 열병식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징징징징징징징징징징징징징징징징징징징징 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포구에 허수아비들을 줄 세울 수 있다 모자를 씌울 수 있다 손에손에 총대를 메게 할 수 있다 호루라길 불어 조용히 시켜 놓고 모조리 같은 높이로 뛰어오르게 할 수 있다 공중에서 멈추게 할 수 있다
너는 바다의 꼭짓점을 끌고 오른다 바다를 확장시킨다 오에서 어까지 튀어 오르는 물방울들의 물기를 말려가며 집어둥처럼 매달려 우화를 꿈꾼다
네가 사라진 자리에 윤곽만 남은 세모와 네모. 나는 허공에 빈집을 지어 놓고 혼자서 몰래 그곳을 드나든다
심언주 시인 / 비는 염소를 몰고 올 수 있을까
비는 오는 건가 가는 건가 넘어지지 않고 계단을 내려설 수 있겠나 4차선 도로를 건너뛸 수 있나 느긋한 건가 서두르는 건가 오리도 몇 마리 데려올 수 있나 우리까지 염소를 몰고 올 수 있을까 후진할 수 있겠나 미는 건가 밀리는 건가 에스컬레이터가 멈춰 서면 쓰러지지 않을 기술이 있나 씻는 건가 씻기는 건가 손금을 볼 수 있겠나 우는 건가 울음을 그치는 건가 이슬인가 촛농민가 이마가 차가운 비는 아픈 건가 나은 건가 늦은 이유를 속아 주는 건가 습관인가 버릇인가 껍질인가 알맹이인가 비우는 건가 채우는 건가 0인가 1인가 버스는 탈 수 있겠나 콘크리트에 으깨진 비는 살아날 수 있겠나 돌에 닿으면 돌이 되고 살에 닿으면 피가 되나 그리는 건가 지우는 건가 연못에 빠져도 고인 물에 섞이지 않을 자신이 있나 원인인가 결과인가 오늘 등록한 비를 내일 또 볼 수 있을까 귀와 강물을 나란히 흐르게 할 수는 없나 내 온몸에 스밀 수 있나 그의 몸을 그려 줄 수 있나 호신용 무기가 되어 줄 수 있나
심언주 시인 / 빨래
어깨에 힘 빼고 팔도 다리도 빼놓고 얼굴마저 잠깐 옮겨 놓으면 어디 한번 구름이 다가와 팔짱을 끼어 보고 바람이 구석구석 더듬다가 밀어 버리고 달이 계단을 걸어 내려와 핼쑥한 얼굴을 얹어도 보고 훈장처럼 별들이 붙어 있다 사라진다. 빠른 타자 속도로 빗방울이 댓글을 남기고 간다. 하늘도 땅도 아닌 곳에 사람인 듯 아닌 듯 떠 있으면
심언주 시인 / 흰 구름을 혼자 두면 안 되는 이유
창에 매달린 흰 구름에 막대를 꽂으면 솜사탕이 혀끝에 서 녹아 내린다. 나는 아직 덜 녹은 내 하얀 이의 성분을 분석 중이다.
그러나 흰 구름을 혼자 내버려 두면 아무 데나 가서 부 딪혀 멍든다. 뭉게, 새털, 양떼, 거위, 풍선, 찐방, 접시에 구름을 나눠 담기도 전에 그것들은 제멋대로 이름을 바꾼 다. 책을 읽는 동안 놓친 흰 구름. 나는 새 구름을 입양할 계획이다.
오래 버려 둔 흰 구름이 씹던 껌처럼 검게 눌어붙어 있다. 무더기로 구름이 부서져 내린다. 마을 전체가 고립된다나무, 집, 자동차를 토핑으로 얹은 마을이 딴 세상으로 배달된다.
심언주 시인 / 수평선 나는 당신의 가장자리 당신과 멀어지는 자리 포옹의 가장자리에서 관심의 가장자리에서 두 팔을 벌린 나는 오후에 밀려난 오전 물러설 곳 없는 물결 나는 당신의 가장자리 당신으로부터 가장 먼 자리 구름과 물고기도 서성이던 문장들도 다 놓치고 떠밀려간 하루의 가장자리 물기를 털면서 늘어지려는 다짐이나 팽팽히 당겨보는 당신과 나의 자리 다행의 가장자리 누워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자리 밤이 필요한 자리
심언주 시인 / 식빵을 기다리는 동안
어떻게 될지 몰라
웅크린 채 몸을 말고 있다 보면
부풀 수 있다.
속이 꽉 찬 소시민이 될 수 있고 위기마다 일어설 수도 있대.
식빵과 나란히 누워 일광욕을 하고 싶어.
네모를 유지해 가며 메모하고 싶고
찢고 싶고
책 안 읽어도 꾸준히 한 장씩 식빵만 먹으면 사람이 될 수 있대.
뜯을 때보다 뜯길 때가 더 마음 편한 거래.
햇볕에 부푼 낙타 등을 어루만지며 수고했어. 라고 말해주고 싶어.
낙타보다 식빵보다 내가 먼저 무너져 걱정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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