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리 시인 / 기념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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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리 시인 / 기념
집주변을 물색하는 여러 마리가 겁에 질린 내 눈동자를 포착했다 주차장 대문이 확 열리고 주인집 차가 들어왔다, 그 아래 회색 계단을 두 개 내려가면 반지하 내가 사는 현관문이 있었다 외출할 땐 차 틈으로 몸을 살짝 기울여 빠져나왔다
창문 너머 담장을 뛰어넘는 녀석이 미워 꺼져! 발걸음을 멈춘 채 고개 돌려 노려보더니 하-악 처음 눈을 마주친 그날, 나는 한방에 눈을 깔고 말았다
집이 없어도 새끼를 낳겠노라, 불빛 켜 동네를 지배한 고양이의 승전가 들리는 새벽 생후 사흘 만에 패배가 선을 그렸다 기념문학관 같은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천식처럼 꼬물거렸다, 운율이었다
이승리 시인 / 일기예보
노점상에서 귤을 사는데 젊은 노숙자가 찾아왔다 몇 개 좀 달라고 하여 무방비한 주머니에 넣어주자 안주머니 같은 진단서를 꺼내 보였다 처방 날짜 지나간 열차 붙든 채 파라솔 꼬챙이 타고 울먹거린 겨울비 영등포역 밖으로 맨몸이 우산인 짐승 한 마리, 실려 주말 저녁처럼 사라지곤 했다
이승리 시인 / 채집
세상에 저런 윙크도 있다니
초록 신호를 기다리는데 불쑥, 씽
잠자리 한 마리 날아간다
어릴 적 하도 찢고 다녀 멸종된 줄 알았는데
혁명 같은
이승리 시인 / 이미 돌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다는 사람들의 말에, 거기에 보태어 날아가면 안 되니까 주머니에 돌이라도 몇 개 넣고 다니라는 여자의 말에 나는 가슴에 몇 개의 돌이 있는 것 같아 가끔은 사람도 여자도 아닌 하얀 形體가 와서 돌을 얹고 가더라. 정작, 가슴의 이런 돌들 때문에 바람이 불면 돌연히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아 그런데 사람도 여자도 그 돌을 알면서 돌을 치워주지 않더라. 아마 각자의 형편으로 눌린 돌이 존재 할 테니까-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돌 같이 울고 돌 같이 눕더라. 삶은 지탱을 위한 돌인 반면 지탱을 위해 채이고 얹혀- 돌이 되는 것을 자각하자마자
-<문학과의식> 2012년 겨울호
이승리 시인 / 산굴뚝나비의 전설
들어보겠나 산굴뚝나비의 전설 윗세오름 풀밭을 날아다니는 산굴뚝나비 몸통을 보게 검은 연기로 둘러싸인 마을 산굴뚝나비 날개를 보게 뱀눈 무늰 실탄이 박혀 아직 도려내지 못하는 거라네
산굴뚝나비는 총살당한 아이 부녀자 젖먹이가 산으로 보낸 편지라네
하늘에서 붙여온 우표가 굴뚝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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