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인 시인 / 영원한 세계 외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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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인 시인 / 영원한 세계
에베레스트 산기슭, 마이야 센 할머니*가 노래를 부른다 구름 음계를 타고 흐르는 노랫말 - 랄리구라스가 활짝 피었지만 피리는 없단다 - 심장이 두근거리는 노래 부르지 않아 할머니는 마지막 한줌의 눈처럼 따뜻해진다, 녹아내린다 절벽 아래엔 옥수수자루를 나르다 발을 헛디딘 아이가 붉게 물들어 있고, - 들꽃 한송이 피었다 지는 것처럼 - 너는 태어났단다 - 염소가 너를 배불리 먹고 - 너의 부모가 염소를 배불리 먹고 이건 슬프지 않은 이야기, 4월이 융단처럼 바닥으로 내리면 녹아내린 눈은 기쁘게 구름이 된다 할머니는 남은 음계 하나를 몸 안에 담고, - 아이야 우리는 영원해졌단다 한번도 부르지 않은 노래를 부른다
* 네팔서부의 지역어인 쿠순다어를 구사할 수 있는 지구상의 마지막 사람.
최서인 시인 / 입하入夏
여름밤은 두툼하다. 개구리 울음소리로 어둠의 수심을 조절할 수 있다. 막 심은 모들이 밤의 발바닥을 쓰다듬는다. 웃음 이 후드득, 동그랗게 못자리를 그리며 퍼져나간다. 개구리가 발을 담가 물결의 겹을 센다. 발가락마다 빗방울을 매단다. 올챙이가 물방울을 닮은 건 수생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지만 나이가 드니까 헤엄치는 방법을 자꾸 까먹는다. 물갈퀴가 조금 씩 얇아지고 있다.
빗줄기는 자정子正을 단단하게 다진다. 작은북을 두들기듯 칠흑의 막이 미세하게 떤다. 파도소린가. 멀리서 밀려오는 박 수소리에 물기가 묻어 있다. 불면이 촉촉해진다. 만질 수 있는 밤은 드문드문 이어져서 꼭 붙들어야하는 단점이 있지만, 5월은 손잡이가 있어 다행이다. 창밖이 누렇게 익은 보리밭처럼 밝아올 때까지 손을 놓지 말자. 손은 한동안 여름밤을 붙잡은 상태, 당기면 길게 늘어진다.
최서인 시인 / 닐손의 장어
우주의 하루를 살았다. 하늘은 가장자리가 부서져 내렸지만 등을 포기하지 않았다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가를 생각하는데 오전을 보내고 구름 귀퉁이를 기어가다 미끄러진 지렁이를 잡아먹는 동안 느루 내리는 비처럼 은사시나무의 오후가 지나갔다. 고함치듯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무지막지하게 지붕을 덮어버린 꽃잎이나 잠깐 흘러들어온 냄새에 온 정신이 흘리기도 했지만 그것이 시간의 다른 얼굴이라면 나는 잠시 시간을 사랑했던 것 나의 하루는 길어서 이미 사라진 시간의 꽁무니 뒤로 수만 마리의 새가 부리를 비비며 날아갔다 나뭇잎 한 장이 만든 그늘 아래 고개를 묻고 어쩐지 경건한 마음으로 어제를 떠올리는 건 기도없이는 할 수 없는 일, 손 대신 온몸을 모은다 찰나에도 떴다 지는 별과 무시로 바뀌는 바람의 온도 둥글고 긴 허공을 이해하는 동안 귀돌에 새겨진 시간들 새가 떠난 나뭇가지처럼, 나뭇가지 그림자를 부풀리며 지는 해처럼 돌아보면 침묵같이 아득한 하루를 살았다
*닐손의 장어=1859년 당시 8살이었던 사무엘 닐손이 우물에 던진 후, 2014년 8월 죽은 것이 발견될 때까 지 155년 이상을 살았다는 뱀장어
-2014 김유정 신인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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