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숙 시인 / 꽃 신 외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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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숙 시인 / 꽃 신
꽃신 사온다던 어머니 빈 함지박에 달무리만 가득 이고 오셨다
꽃신 장수가 홍수에 다 떠내려가고 없더라
눈깔사탕이라도 사오시잖고 종일 배곯고 기다렸건만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린 어머니 그럼에도 당당하셨다
다음 장에 가서는 꼭 사오시마던 꽃신 한 번도 신어보지 못했다
감나무에 걸린 초승달이 훌쩍 훌쩍 훌쩍인다
정병숙 시인 / 해 뜨는 집
제기동 “해 뜨는 집”에 토르소가 산다 갈증이 나는 이른 아침마다 유리컵에 작은 바다가 담긴다 쪽물빛 순천만 아른아른 대는 고향 바다, 쌩- 칼 갈매기가 허공을 벤다 깃털구름의 붓 하나 잠시 떠 있다가 토르소가 보이지 않는 팔을 휘저어 일필휘지 수평선을 긋고 그윽이 바라보는 작은 바다, 해가 떠오른다 환하다 와원 앞 바다 “용왕님, 해파리, 말미잘, 해삼, 멍게는 성히 잘 있나요?” 어쩌나 가늠하지 못할 팔 없는 외로움 토르소가 일으키는 파도에 중심 기우뚱 몸이 흔들린다 밤마다 돋고 자라나는 토르소의 날개 깃털, 샛별 따라 묵향 머리에 이고 어둡고 후미진 골목을 지나서 햇살 속 빨간 나비 떼춤을 춘다
<시향> 2008. 봄호
정병숙 시인 / 나 지지배
순천만 새가 초경을 할 때 갈대밭에 살랑살랑 바람이 들어 불바다가 됐다. 피비린내를 맡은 동네 사내 녀석들 온 몸이 살랑거려 새를 몰아 알을 훔치거나, 어린 새를 잡아 하루쯤 노리개로 가지고 놀다 거의 죽어 갈 때면 다시 물가로 나가 갯바닥에 그만 버려두고 왔다. 뒷날 또 그 뒷날 새끼를 잃었거나 알을 잃어버린 어미 새들은 온 갈대밭을 휘젓고 다니며 미친 듯이 지져댔다. 나 지지지지지배 나 지지지지지배 나 지지지지지배……
밤이 되자 더욱 바빠진 새들의 순천만, 또 어느 집 어느 새가 초경을 하시는지 온 동네가 들썩 들썩 들썩 인다.
-<시평> 2008년 가을호
정병숙 시인 / 늪이 아픈 밤
이른 아침부터 손님 맞을 준비에 바쁘다. 그는 오늘도 여전히 제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손님을 치른다는 게 여간 귀찮은 게 아니지만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다. 행여 그가 찾아 주지 않거나 늦게 올 때면 희비를 불러들인다. 알을 품어 보지 않는 사람은 모를 일이다. 그러 한, 그러 한, 한 달 뒤 애써 기다리지 않았는데 찾아 든 달거리 그가 올 때쯤 이슥한 어둠을 기다려 새벽을 달려 간 능내리 나보다 먼저 찾아든 생이 있었다. 비좁은 늪 속에서 자리다툼을 하는지 시끌벅적 소리란 소리는 다 모여 왁왁 댄다. 소금 장수, 풍뎅이, 길 잃은 메뚜기, 덩달아 날 뛰는 별 들, 부욱- 북 소리에 맞춰 울어대는 암컷 개구리, 도대체 어디가 늪이고 어디가 하늘인가 요실금 걸린 먹구름이 갈겨놓은 자욱한 안개, 나를 숨기기엔 딱 안성맞춤이다. 나를 자궁 안에 가둔다. 그러 한, 한 달 뒤 찾아든 달거리
- 2007년 다층 겨울호 젊은 시인 7 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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