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녀 시인 / 어리연꽃 외 5편
|
김두녀 시인 / 어리연꽃
어리연꽃에 안긴 꿀벌 한 마리 잠든 듯 꿀을 빨고 있다
첫 아이를 낳아 젖을 물리고 있는 저 평화 저 행복
남은 시간이 이토록 고요했으면 좋겠다
김두녀 시인 / 꽃길을 걷다가
진달래능선을 타다가 벚꽃길을 걷다가 아카시아꽃길을 간다 꽃은 피고 지고
왕소금을 뿌린 듯 까치가 가로막던 그 길을 간다 씁쓸한 내 사랑도 피고 지고 온갖 새들의 노래도 지고 핀다
분 냄새가 나서 사방을 두리번대니 소복 입은 찔레꽃 작은 몸 떨림
슬픔도 피고 지는 것을
김두녀 시인 / 각시붓꽃
겨우내 덮었던 낙엽 밀어내며 산모롱이에 핀 작은 각시붓꽃 진보랏빛 미소로 소풍 나온 우릴 반긴다 작년에 만났던 고 작은 각시붓꽃
율아, 이 꽃 좀 봐봐 각시붓꽃이야 ! 아유, 이뻐요! 온아 ! 이 꽃 좀 봐봐, 각시붓꽃이래 !
율이가 동생 부르는 소리에 조용하던 오솔길이 놀라 꿈틀거린다
세상에 나와서 할머니와 처음 본 각시붓꽃 아이들은 이 꽃을 기억할 것이다 “할머니붓꽃”이라고
김두녀 시인 / 삐비꽃이 비상한다
바닷 바람은 모두들 키를 낮추라한다
달맞이꽃 땅에 엎드린 채 샛노란 눈 또랑거린다 발그레한 얼굴 내밀고서 모래찜질을 하듯 앙O 몸을 숨긴메꽃 발에 차인다
어디 너희들 뿐이랴 빌딩 숲 햇귀 찾아 방 한 칸에서 첫아이 낳고 방 두 칸에서 둘째아이 낳아 눈 따 감고 숨죽이며 살았다
이제 허릴 펼까 한다만 세상은 온통 회오리바람 속
우장 쓴 언덕 삐비꽃이 비상을 한다 멸치 떼가 솟아오르듯 은빛 꿈 닐게 털며 하늘로 솟구친다.
김두녀 시인 / 별이 뜬다
나와 그 사이에 별이 뜬다
시선이 가는 곳마다 뜨는 발 빠른 별
내 몸 속에도 돋아난다 머리에 마음 한가운데에 그래서 가슴 아린 별
손톱 발톱에도 뜬다 빠알간 꽃잎으로 뜬다
김두녀 시인 / 민들레, 그 모성
부추밭에서 꽃진 민들레를 캐다가 앞 베란다에 펼쳐 널었다
하루만에 다시들어버린 민들레 허공에 부풀어 오른 둥근 씨앗 민들레는 제 몸 비틀어지는 아픔 속에서 품고 있던 씨를 공중으로 차례로 쏘아 올렸다
그 이튿날에도 사흗날에도 희고 둥근 하 많던 씨앗은 하얀 우주촌을 만들었다
민들레에 놀라 저것 좀 보라고 남편을 불러내고 좀처럼 오지 않는 손주들을 기다린다 한 주 내내 지켜보며 어서와서 애들 좀 보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