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김두녀 시인 / 어리연꽃 외 5편

파스칼바이런 2025. 8. 17. 13:41

김두녀 시인 / 어리연꽃

 

 

어리연꽃에 안긴

꿀벌 한 마리

잠든 듯 꿀을 빨고 있다

 

첫 아이를 낳아

젖을 물리고 있는 저 평화 저 행복

 

남은 시간이 이토록 고요했으면 좋겠다

 

 


 

 

김두녀 시인 / 꽃길을 걷다가

 

 

진달래능선을 타다가

벚꽃길을 걷다가

아카시아꽃길을 간다

꽃은 피고 지고

 

왕소금을 뿌린 듯

까치가 가로막던 그 길을 간다

씁쓸한 내 사랑도 피고 지고

온갖 새들의 노래도 지고 핀다

 

분 냄새가 나서

사방을 두리번대니

소복 입은 찔레꽃

작은 몸 떨림

 

슬픔도 피고 지는 것을

 

 


 

 

김두녀 시인 / 각시붓꽃

 

 

겨우내 덮었던 낙엽 밀어내며

산모롱이에 핀 작은 각시붓꽃

진보랏빛 미소로

소풍 나온 우릴 반긴다

작년에 만났던 고 작은 각시붓꽃

 

율아, 이 꽃 좀 봐봐 각시붓꽃이야 !

아유, 이뻐요!

온아 ! 이 꽃 좀 봐봐,

각시붓꽃이래 !

 

율이가 동생 부르는 소리에

조용하던 오솔길이 놀라

꿈틀거린다

 

세상에 나와서

할머니와 처음 본 각시붓꽃

아이들은 이 꽃을 기억할 것이다

“할머니붓꽃”이라고

 

 


 

 

김두녀 시인 / 삐비꽃이 비상한다

 

 

바닷 바람은

모두들 키를 낮추라한다

 

달맞이꽃 땅에 엎드린 채

샛노란 눈 또랑거린다

발그레한 얼굴 내밀고서

모래찜질을 하듯

앙O 몸을 숨긴메꽃

발에 차인다

 

어디 너희들 뿐이랴

빌딩 숲 햇귀 찾아

방 한 칸에서 첫아이 낳고

방 두 칸에서 둘째아이 낳아

눈 따 감고 숨죽이며 살았다

 

이제 허릴 펼까 한다만

세상은 온통 회오리바람 속

 

우장 쓴 언덕

삐비꽃이 비상을 한다

멸치 떼가 솟아오르듯

은빛 꿈 닐게 털며

하늘로 솟구친다.

 


 

 

김두녀 시인 / 별이 뜬다

 

 

나와 그 사이에

별이 뜬다

 

시선이 가는 곳마다

뜨는 발 빠른 별

 

내 몸 속에도 돋아난다

머리에 마음 한가운데에

그래서 가슴 아린 별

 

손톱 발톱에도 뜬다

빠알간 꽃잎으로 뜬다

 

 


 

 

김두녀 시인 / 민들레, 그 모성

 

 

부추밭에서

꽃진 민들레를 캐다가

앞 베란다에 펼쳐 널었다

 

하루만에 다시들어버린 민들레

허공에 부풀어 오른 둥근 씨앗

민들레는 제 몸 비틀어지는 아픔 속에서

품고 있던 씨를 공중으로 차례로 쏘아 올렸다

 

그 이튿날에도

사흗날에도

희고 둥근 하 많던 씨앗은

하얀 우주촌을 만들었다

 

민들레에 놀라

저것 좀 보라고 남편을 불러내고

좀처럼 오지 않는 손주들을 기다린다

한 주 내내 지켜보며 어서와서

애들 좀 보라한다

 

 


 

김두녀(金斗女) 시인

전북 부안 출신. (서양화가). 전주교육대학교 회화과 졸업, 미술특기 교사 재직, 1994년 <해평시>에 '바가가 불렀다' 외 9편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한국작가회의 고양지부장 역임, 상황문학 직전회장, 한국시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서울시인상, 경기도문학상 본상 수상, 시집 <여자가 씨를 뿌린다> <삐비꽃이 비상한다> <꽃에게 묻다> <빛의 정에 맞다> 외 공저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