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김숙자 시인 / 바람집 외 4편

파스칼바이런 2025. 8. 18. 16:12

김숙자 시인 / 바람집

 

 

 만추에 피는 꽃 속에는 바람집이 있습니다 만추의 어느 날 꽃에 귀를 대보면 양지바른 툇마루에 앉은 바람계집이

 톡 분첩 닫는 소리 들릴 겁니다 후우 불면 날아갈 국화꽃에도 매화 향긋한 꽃술에도 태양 붉은 혀 간지러운 노란 은행잎에도 바람집은 깃들어,

 만추의 어느 날 나는 피는 꽃 속의 그 집으로 우리 아버지가, 남편이, 세상에! 내 아들까지 들락날락하는 걸 봅니다 정말 화가 나죠 그러나 까르르 입 속에 꽈리 넣어 불 듯 입술을 오므려 후우 불면 날아 갈 국화꽃에도 매화 향긋한 꽃술에도 태양 붉은 혀 간지러운 노란 은행잎에도 바람집은 깃들어 여기저기서 톡톡 바람계집 분첩 여닫는 소리에,

 만추의 어느 날 꽃 옆에서 나는 분첩을 톡 소리 나게 닫아봅니다

 

 


 

 

김숙자 시인 / 무궁화

벙어리 냉가슴을

보랏빛에 의지하고

찾는 이 없는 골에

모퉁이서 고즈넉히

풍상이

섞어친 몸을

민족혼에 다독였네

​​

터 잃어 아픈 맘을

분홍빛에 달래우고

울타리 부추기며

초가 삼간 지킨 보람

팔월을

피어도 절반

거듭나는 무궁화

 

 


 

 

김숙자 시인(명헌) / 교귀정交龜亭*

 

 

한 가닥 흘러가는 물소리 따라가면

명경 같은 팔왕폭포 가슴에 껴안고서

눈물로 반가운 소식 전해주는 교귀정

 

누대에 아름답게 물봉선화 꽃이 피고

마주한 노송들이 다람쥐 불러모아

지나는 길손들 발길 머물다가 가라네

 

*交龜亭 :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소재. 조선시대 신구 경상도 관찰사가 문경새재 교귀정에서 만나 관인을 주고받음으로써 업무의 인수 인계가 이루어지던 곳

 

 


 

 

김숙자 시인(명헌) / 백조가 된 소녀

 

 

사방이 까맣게 물던 공간에

파란 호수가 커텐 뒤에서 나온다.

깃털마다 비취로 장식한 백조 한 마리

 

수정처럼 마알간 호수에서

기를 모아 발꿈치를 들고

하늘을 향해 일자로 뻗는다.

 

동그란 원을 그리며 일렁이는 깃털

상 하행으로 크고 작은

달 바다를 이고

자전과 공전을 한다

창공을 오른다.

 

다시 내려와 살포시 앉는다

그리고 고개를 떨군다.

 

시기와 질투, 오만으로

자아 상처를 움켜쥐면서

실핏줄을 연신 토해 낸다.

 

 


 

 

김숙자 시인(명헌) / 사랑무

 

 

까만 밤하늘에

내려온 은하수

황금 무대만들어 놓고

대 여섯보 뒷걸음쳐

겹겹이 쌓아 올린

 

초승달 자리에 둘러앉아

주홍빛 잔잔히 벅찬 공간 만든다.

 

선남 선녀, 입에 머금은수줍음

다정 다감하게 손 잡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춤사위 한다.

 

나비가 유혹하여도

흔들리지 않는

가슴 깊이차곡 차곡 쌓인 그리움

보문호수에 오층탑으로 솟아 오른다.

 

내 마음그대 찾아가슴팍에 파묻혀

부푼 가슴으로 신음하며뒤틀리는 육신

황혼빛에 젖어 무아지경으로

번져오는 회심이 허공을 헤맨다.

 

 


 

김숙자 시인

1964년 경북 상주 출생. 아호: 명헌(茗軒). 경북대학 잠업과 졸업. 2004년 <문학세계> 시 등단. 2005년 나래시조 시조 등단. 미당서정주문학상, 문화예술대상 수상. 저서 <날고 싶은 제비>장편소설. 시집: <가족사진> 출간. 한국문인협회싱주지부사무국장역임, 드라마를 사랑하는모임 3기수료, 한국문학인대사전 출간에 선정, 경북향토연구회회원,국학연구이사역임, 샘터 인간승리상수상 최우수상,독도공모대회 시부문 안용복장군상 최우수상 수상, 상주문인협회회원,상주아동문학회회원, 문경새재문학회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