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이영숙 시인(청주) / 소통 외 4편

파스칼바이런 2025. 8. 18. 16:17

이영숙 시인(청주) / 소통

 

 

목소리에 봄이 느껴지면

어느새 가슴도 봄동처럼 초록이다

 

봄 열리는 소리에 그대가 따라오고

잃어버린 시간도 날개 달고 오른다

 

두 눈 가득 초승달이 차오르면

어느새 다가와 심장처럼 뛰는 사람

 

여기저기 만들어지는 웜홀

둘이서 만든 지름길

그대가 너로 오는 날

 

 


 

 

이영숙 시인(청주) / 바늘도 아프다

 

 

상처 난 자리를 훑고 간 자리마다

바늘의 푸른 비명이 소리없이 흩어진다

찔러야만 다시 설 수 있는 운명이기에

통증으로 멱 감으며 과거를 현재로 옮기는 작업에

일자의 잡념이다

 

아프지 않고 태어난 것들은 없다

따갑게 찔린 만큼 붉은 빛깔을 물들이며

그렇게 아파서 절규한 것들로 세상은 눈 부시다

 

터져 나오는 비명들은 꼭꼭 여며 남루한 솔기에 묻어 두었으니

무심히 홀쳐놓고 매몰차게 나갔다고 혀 찰 일은 아니다

 

바늘도 찌른 만큼 아프다

 

 


 

 

이영숙 시인(청주) / 봄날에는

 

 

이른 봄

산골짜기에서 태어난

꽃바람이고 싶다

 

당신의 빛으로 채색된 꽃잎 속을

물결처럼 드나들며

향기로운 은혜의 집을 짓고 싶다

 

삶의 갈피마다

뽀얀 흙먼지를 씻어내며

봄비이고 싶다

 

청결한 언어와 마음으로

깨끗한 기도를 드리며

출렁이는 강물로 흐르고 싶다

 

내딛는 발자국마다

연둣빛 싹을 틔우는

투명한 햇살이고 싶다

 

따스한 가슴으로

서로의 상처를 다독이며

눈부신 환희로 일어서고 싶다

 

 


 

 

이영숙 시인(청주) / 원점

 

 

용서하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고

 

이해하지 않으면

머무를 수 없다

 

이성의 꼭짓점을 넘어야

비로소 이르는 원점

 

 


 

 

이영숙 시인(청주) / 게바의 꿈

 

 

새해는

교회당 꼭대기에 세워진 십자가의 불빛이

보름달보다 더 크게 빛나서

어둠을 밀어내려는 이들의 나침반이 되게 하시고

시커먼 굴뚝 위에서 쇠공을 쏘아 올리는

이 땅의 가난한 난쟁이들의 차가운 눈물을 닦아주소서

 

새해는

용궁으로 간 별주부들 소라 귀를 열고

속을 뒤집어 해일로 말하는

바닷속 이야기를 듣게 하시고

열두 장의 달력마다 몸으로 그린

십자가를 망월처럼 채워 넣게 하소서

 

새해는

우리 모두 시간의 문을 힘차게 열고

파란 시간을 엮어가는 고기잡이 시몬처럼

게바의 꿈을 이루게 하소서

 

-시집 <사자는 짐을 지지 않는다>에서

 

 


 

이영숙 시인(청주)

충북 청주 출생. 충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2004년 '창조문학'으로 등단. 시집 <우리가 눈물을 흘리지 않아 강물도 심장이 마른다>, <사자는 짐을 지지 않는다>. 현재 '전국비존재' 동인, '청주비존재'동인 회장으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