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임수련 시인 / 동행同行 외 2편

파스칼바이런 2025. 8. 19. 13:58

임수련 시인 / 동행同行

 

 

 넌지시 수평선 바라보이는 생선가게에 들러 혼례 치르는 듯 한손씩 짝지어져 있는 자반고등어 고르다 보면 짝을 이룬다는 것,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의 살과 뼈 부드럽게 껴안고 한 몸 이루고 있는 자반고등어들 바다 속 떼지어 다닐 때부터 이날을 언약했을 것이며 구름이 그물 끌어당길 때에도 눈맞추며 생사를 함께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축포를 쏘는 듯 물 뿜어 올리는 대합들과 하객처럼 줄지어 있는 갈치떼와 꽃게들 뒤로 한 채 시장바구니에 담겨 촘촘히 떠나는 낯선 그 길이 뜨겁게 달구어진 팬, 혹은 망상한 가시무덤으로 향하는 길일지라도 하나가 아닌 둘이라서 든든할 것이고 죽어서도 짝 이루어 뜨겁게 익어가는 저 자반고등어들, 지상의 모든 것들 짝 이루어 번성하라는 신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임수련 시인 / 떡갈나무약국

 

 

밤새 앓고 난 후엔

딱따구리구리 마요네즈 케챱은 맛있어

인도사이다 인도사이다,

콧노랠 흥얼대며 떡갈나무약국을 찾아가죠

솜털 가운을 걸친 새들

자잘한 열매 알약들과 이슬 드링크 들고

분주하고요 떡갈잎 의자에 앉아 깔깔대는 노란 햇살들

눈곱 씻은 바람이 흔드는 나뭇가지 소파

꼬마전구 도토리 알 켜져 있는 조제실 구석에선

약봉지 바스락대는 사슴벌레랑

무당벌레의 그루잠도 훔쳐볼 수 있어요

콧노랠 흥얼거리며 향과 색과 소리들이 화답하는

떡갈나무약국을 찾아가 보시죠

어린 살결처럼 싱싱한

푸른 그늘 대기실에 앉아 깨알같이 씌어진

마음의 처방전 읽고 있으면

어떤 상처도 아물게 한다는

까만 눈 속에 당신을 태운 다람쥐 한 마리

지구보다 더 너른 나무의 세계로 안내해 드리고요

떡갈나무약국의 주인장 오색딱따구리와

구름트럭 끌고 약 배달 온 빗방울의 경쾌한 대화도 들을 수 있죠

가끔 늦은 시간에 찾아가면 밤의 이마에 새겨진

따갑고 노란 눈동자들 등을 파고들고

약국 처마의 기둥들이 굵어지는 걸 볼 수도 있는 곳

참 그곳엔 그 기둥들도 혼신으로 즙을 짜낸다는군요

마음이 푸석하게 부어올 땐

딱따구리구리 마요네즈

케챱은 맛있어 인도사이다 인도사이다,

콧노랠 흥얼대며 떡갈나무약국을 찾아가 봐요.

 

 


 

 

임수련 시인 / 동물방송국 9

- 홈쇼핑 광고

 

 

 안녕하세요, 지난번 방송에서 코끼리하이힐과 금붕어발톱깎이 전 품목 매진을 기록했던 창조 쇼핑의 쇼호스트 미스코끼리입니다.

 

 오늘은 세계 굴지의 매직여행사가 최고의 여행지로 손꼽는 앵무랜드를 소개합니다. 앵무랜드 의 앵무새들은 여러분이 던지는 말을 부메랑처럼 돌려줄 수 있습니다 리 하지마, 헬로 되우, 아안녕! 지구촌 곳곳의 인사말은 물론이고 여러분이 싱싱한 달걀 같은 말을 던지면 봄나들이 종종종 병아리 같은 말들을, 목련꽃 같은 말을 건네면 쭈르르 향기 같은 말을 뿌려줍니다. 이곳의 명물인 왕관앵무와 유리앵무는 깜찍한 금빛왕관 같은 말과 반짝이는 유리구슬 같은 말을,

 

 아, 그리고 귀여운 목도리앵무들의 보풀보풀한 말을 목에 둘러볼 수도 있습니다.

 

 앵무랜드 입구에서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호객행위를 하는 구관조가이드 말은 귀에 담지 마세요. 입장료와 약간의 옵션비만 내시면 어떤 말이든 오월의 꾀꼬리소리로 바꿔주는 금강앵무의 말과 작은 요정처럼 나뭇가지에 쪼그리고 앉아 러브, 러블리를 외쳐대는 사랑앵무의 터키과자 같은 말들 맘껏 즐길 수 있죠. 또한 쫑알쫑알 앵두알 쏟아내는 앵무들의 소리를 여러분의 달팽이관에, 마음의 자루에 가득 담아 구름비행기에 실으셔도 할증료가 붙지 않습니다.

 

 단, 종일 밀려드는 관광객에 질려 졸음 속에 말을 구겨 넣고 잠을 청하는 앵무들, 돌아서서 똥 묻은 꽁지 치켜드는 놈, 똑같은 말을 자꾸만 던지는 여러분을 내려다보며 구경꾼처럼 조롱 속에서 조롱을 보내는 앵무는 조심하십시오.

 

 꾸욱 입 다문 앵무들 앞에서 배려심 없는 여러분의 입들이, 벙어리 새들 모아놓고 이것들이 사기쳤잖아! 썩은 사과나 벌레 같은 말들 쏟아낼라치면, 순식간에 조롱과 조롱 속에서 상한 과즙 같은 말들이 여러분 면상에 던져질 것이고, 다족류의 말들 마음의 자루 속에 바글바글 들끓게 될 것이니…한 입술에서 천국 같은 말과 지옥 같은 말이 튀어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지요?

 

 네? 앵무새처럼 조잘댄다구요. 서둘러 방송을 끝내겠습니다, 지금 전화 주십시오. 싱싱한 봄 같은 목소리로 구매하시는 분께는 10% 할인혜택을 드립니다.

 

<다시올문학> 2010. 여름호

 

 


 

임수련 시인

1960년 경남 통영 출생. (본명 임외자). 한국방송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주문예대학 수료. 경주대학교 시회교육원 문예창작반. 현대중공업주최 전국백일장 시부문 은상 수상. 신라문화재백일장 시 부문 최우수상 수상. 방송대 학우문학상 시 부문 최우수상 수상. 2003년 대전일보 시 부문 최종심. 2006년 서울신문 시 부문 최종심. 2007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