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서린 시인 / 박자 외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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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서린 시인 / 박자
초보엄마가 윗몸을 들썩인다 위,아래로 하나 둘 어깨를 흔들다 포대기를 향한 왼손 토닥토닥 계산된 리듬을 풀어놓는다 히잉잉 어린 말울음 소리 섬유 사이를 비집고 오줌 지린 생활은 냄비 바닥을 태워도 그녀의 품은 오차 없는 긴장을 간 한다 꿈 속에서 훌쩍 자란 아기가 키를 재는 듯 어깨는 하늘,땅을 하고 등을 쓰다듬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때리는 것도 아닌 툭,툭 문을 열고 나간 세상의 첫발이 어디 걸린 것일까 히이잉 말울음 소리 구름을 열고 채찍 하나 가져온다 엄마가 달린다 허약해서 체력시험이 두려웠던 학교 담을 넘어 허허로운 벌판 가운데 내동댕이쳐진 엄마 흔들흔들 토닥,토닥 공원의자를 무대 삼아 리듬이 말랑해질 때까지 혼자 달린다 내다버린 박자가 늦봄 꽃잎으로 나부낀다 밖으로 달려 나가는 울음소리 징징 버린 푸른 하늘,담은 품을 흘리지 않으려 느릿느릿 저녁이 온다
-2013, 계간 시인정신 여름호에서
전서린 시인 / 달팽이집
달팽이가 되어보면 알지 한 자리에 새긴 집과 자세를 바꾸고 싶지 몸에 새긴 생채기는 푸성귀로 누르고 푸른 잎을 껴입고 다른 집으로 들어간 적 있지 높이에 닿는 건 진액이 마르는 목숨을 내어주는 일 낮은 화분은 기억 밖으로 흙을 밀고 가지 않아도 좋은 양식 단잠이 들기도 하지 제 집을 비운 달팽이 날벌레 한 살림 믿고 들어앉은 집 낮은 포복으로는 찾을 수 없는 집 한 생을 처음부터 시작해도 불가능해 치명적인 소금기에 감각 하나는 지워지지 호흡과 항문이 나누어지지 않으면 어때 독실(獨室)의 고독을 복사해서 되돌려주는 힘 그 안에 있는 걸
무엇을 찾으려고 꼭 맞는 집을 버렸을까, 터질 듯 살다 이제는 타버린 집 날벌레도 집도 흔적 없는 집 사랑을 풀어 게으른 애인을 버리고 층층 올라서다 주저앉은 저 달팽이 매운 그늘 아래 제대로 걸린 무덤 흔적마다 따라오는, 주검 속으로 들어간 여리고 늦어진 생이여
-시집 『달팽이 집』 2016. 오감도
전서린 시인 / 너의 상상을 먹고
너의 상상을 먹고 덜 자란 꽃이 나비가 되고 너의 상상을 먹고 새는 물고기가 되고 너의 상상의 쌀알 불린 산이 평지가 되고 악보를 고쳐 도돌이 노래를 즐기네 다른 상상을 불러와 배부른 생각들이 베이킹파우더에 닿아 발효 시간을 줄이네 상상으로 늘린 사과가 상상으로 늘린 고기가 상상으로 늘린 채소가 구석구석 물비늘 돋아 기어 다니네 싹이 돋기 전에 소멸되는 상상들 머릿속을 뒤집어 칠월 볕에 말리네 너의 상상을 먹고 웃자란 별이 절규하네 살갗을 잃은 뭉크가 창문을 열고 들어가 내 살을 껴입느라 나를 고쳐 죽이네 너에게 가기 싫은 생각들을 버리느라 알람을 수정하네 네 시계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바늘 하나를 버리네 재깍재깍 상상을 밀어 눈송이가 된 지구가 풋것을 발설하네 가지에 찔린 풍선을 모자로 쓴 네가 구멍 뚫린 바람을 불고 있네
전서린 시인 / 물방울에게
기울고 터져 약하고 작은 것이니 네 안에 내가 들 수 있니 투명하면서도 가장 두꺼운 벽이었으니 너에게 나는 닿을 수 있니 들지도 놓지도 못하고 밖으로만 도는 주저함이여 길을 여러 개 나누는 것은 자리 잡은 중심을 버리는 일 충고도 아닌 애정도 아닌 질투도 아닌, 아닌 것들의 변명을 폐부 깊숙이 새기려다 달아날까 구경만 하는 물방울이여, 늦도록 도망간 소식이여 네 눈 속에 내가 들어가 도로 밖으로 나오는 보이지 않는 물방울이여, 멀리서 보면 고요함이여 다가오면 겹겹의 소리를 내는 방울이여 먼저 밥 먹고 나앉다 잊히지 않는 투명이여 네가 타고 다니는 구름 속에는 또 얼마나 많은 착각이 집과 산과 들이 믿고 닿는 방울이여 통통 튀어 오르다 기어이 제 안을 숨기고 화려한 기억으로만 남을 사치여 허상이여 울음으로 스스로 젖는 방울이여 그대 무너지는 힘이여
—시집 『달팽이집』 (201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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