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주종환 시인 / 북소리 외 2편

파스칼바이런 2025. 8. 19. 15:02

주종환 시인 / 북소리

 

 

언제 멈출지 모르는 심장,

그 생명의 북을 치는 에너지의 신비

 

겨울잠 자는 뱀의 꿈속에

한 마리의 나비가 날고

여름 낮잠을 자는 나비의 꿈 속에

차가운 땅속에 웅크린 뱀이 꿈틀거리듯

 

이 지상의 모든 생명을 뛰놀게 하는

그 북소리,

문득 잠에서 깨어나 듣는

나의 오랜 메아리

 

-시집 <마음 한 켤레 벗어두고 깜빡 조는 샛별처럼>에서

 

 


 

 

주종환 시인 / 세상 구경 어려워

 

 

산으로 가는 길

바다로 가는 길

강으로 가는 길

시냇가, 계곡으로 가는 길

들판으로 가는 길

떠오르는 해,

지는 석양 구경 가는 길을

다 철책과 장벽으로 막아놓은 길들

이 세상 모든 길이 다 막혀 있어도

매일처럼 다가오는 빛

햇빛, 달빛, 그리고 별빛

길이 사라지는 곳에서

시작되는 그 빛

그 눈빛을 공유한 우리는 아직

살아있네, 살아 남아서

마음으로 발을 동동 구르네

 

 


 

 

주종환 시인 / 신인간을 위하여

 

천국은 이 세상에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상향이다

그리고 이 우주 전체는 6일 만에 만들어질 수도 없다

각기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 깨달음에 이른 자들의

언어와 표현, 소통도구들이 각 대륙의 종교들이 되었다.

거기에 이 세상 모든 민족의 탄생설화와 신화들이

철학과 음악과 시와 그림들로 첨가되었다.

철학이 발달하자, 신과 실존이라는 개념이 충돌했다

과학이 발달하자, UFO라는 개념도 창조했다

전자는 無의 성질을 띠면서 有의 블랙홀 속으로 사라졌고

구름 위의 신성한 도시들은 비행기 때문에 사라졌고

사회적 미신과 기성종교, 체제가

새로운 세계를 지체시키는 가시밭길로 반복되고 있다

우리는 진실을 알기 위하여

단 한 번도 손에서 책을 놓아본 적이 없었고

한 줄기 빛을 위하여 수천 년 동안 쌓인 어둠의 갱도를 뚫었다

우리는 이러한 4차원적인 상식의 가능성 속에서

민주주의라는 대화의 장을 꽃피워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진보는 개개인들 진화의 한계상황이다

우리는 이 세상 전체가 은닉하고 있는

별빛으로 수놓은 원탁을 새로이 놓고,

새로운 인간들의 동태를, 그 영혼의 개화를 응원하는 눈빛들이다

 

 


 

주종환 시인

1969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 1992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어느 도시 거주자의 몰락』 『일개의 인간』 『신비주의자』 『끝이 없는 길』 『계곡의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