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은 시인 / 화양연화(花樣年華)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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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은 시인 / 화양연화(花樣年華)*
언제부턴가 사내가 쫓아 다녔다 어디서나 보였다 간혹 새벽에 옆에 누워있는 사내를 보고 기겁했다 언제나 표정이 없었다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그의 존재가 익숙해졌다 먼저 말을 건넸다 그 후 사내가 보이지 않았다 목이 쉬어라 불러댔다 대답은 없었다 여기저기 찾아 다녔다 그의 존재가 의심스러워졌다 다른 여자를 쫓아다는 사내를 발견했다 나는 사내를 쫓아다녔다 어떤 표정도 읽어 낼 수 있었다 다정한 말을 건네며 늘 행복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사내는 간혹 그런 날 보며 신기해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제목
기세은 시인 / 욕辱
나는 물고기다 그가 나를 잡았다 나를 생선이라고 부른다 그는 매일 나를 채색한다 나는 화사해진다 침침해진다 반복된다 나는 나를 볼 수 없다 오로지 그의 눈을 통해 나를 만난다 그는 내 주둥이에 그의 페니스를 집어넣다 달콤하다고 느낀다 그는 이리저리 돌린다 깊게 들어오진 못한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집어넣는다 겁에 질린 붕어같은 표정이다 나는 페니스를 씹어서 먹어버렸다 더 이상 나를 색칠해주지 않는다 다른 물고기를 채색하고 있다 물고기는 주둥이가 없다 나는 나를 뚜렷이 응시한다 어떤 색도 필요하지 않다 목구멍에서 쓴 맛을 느낀다 이윽고 토해냈다 그것은 그의 페니스였다 잡색이었다 나는 투명해졌다
계간 『시와 반시』 2009년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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