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박석구 시인 / 약속 외 3편

파스칼바이런 2025. 8. 21. 22:54

박석구 시인 / 약속

 

 

그 날이 오면

푸른 하늘에 나비를 날려 주마.

 

바람으로

꽃밭을 스쳐 가는 바람으로

 

밟혀도 돋아나고

밟혀도 돋아나는 풀잎 위로

구름을 몰고 오는 바람으로

 

밤 새워 오려 놓은 그 나비들

새벽종 날리듯 날려 주마.

 

쉴 곳이 없는 나비가 아니고

영원을 나는 나비로

 

어느 가난한 시인의 못 다한 음성이

돋아나는 그 자리에

꽃잎으로 꽃잎으로 날려 주마.

 

 


 

 

박석구 시인 / 배추벌레는 나비를 꿈꾸지 않아도

 

 

배추벌레는 나비를 꿈꾸지 않아도

나비가 되고

씨앗은 꽃을 꿈꾸지 않아도

꽃이 된단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꿈을 꾸어도

어떤 것도 되지 못했지.

 그것은 우리가 오늘을 살지 않고

내일만을 살기 때문이란다.

 

 


 

 

박석구 시인 / 그놈을 너무 미워하지 마

 

 

그놈을 너무 미워하지 마

내가 미워지니까.

 

미움이 고슴도치가 되어

가슴속을 뒹굴면

나는 어디론지 사라지고

그놈이 내 안에서 요란을 피워

천 날 같은 하루를 살게 하잖아.

 

어디, 그놈에게 고함을 쳐 봐.

그 소리 결국에는 벼락이 되어

나를 사정없이 내려칠 거야.

 

그놈을 너무 미워하지 마

그놈과 싸우면 그놈이 되어

나 없는 세상을 살게 하니까

 

 


 

 

박석구 시인 / 조개껍질은 녹슬지 않는다

 

 

조개껍질은 녹슬지 않는다.

당신과 나 우리가 되어

방축포 모래밭에서 주워온

이야기들은 녹슬지 않는다.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무화과 꽃처럼 아픈 아내야,

내 술잔 속의 바다가 넘쳐

그 모래밭에 숨겨 놓은

우리들의 발자국을 지운다 해도

그 때 그 노래는 지워지지 않는다.

 

내 몸이 녹슬어 부서진다 해도

내 마음은 당신의 가슴에 뭉쳐

다시는 다시는 흩어지지 않는다.

 

내 가슴에 고인 당신의 아픔이

이제는 우유 빛 진주가 되어

내가 떠나도 녹슬지 않는다.

 

 


 

박석구 시인

전북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2011년 <격월간 에세이스트>에 수필 등단. 2015년 <문학에스프리>에 시 가 당선되며 등단. 시집 <바위여> <내가 나에게 이르는 말은> <조개껍질은 녹슬지 않는다> <깨진 장독 속에 하늘을 담아 놓고>. 시선집 <하루에 한번쯤은 혼자 걸어라>. 현재 익산 남성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