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이정애 시인(고령) / 꼴 마중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5. 8. 22. 20:38

이정애 시인(고령) / 꼴 마중

 

 

어머닌 종일 꼴을 베었다

 

햇살이 각도를 버리면

풀을 차곡차곡 쌓아 새끼줄로 묶어

머리에 이고 왔다

 

삐죽삐죽 튀어나온 풀들은

제멋대로 넌출거렸다

 

저물어 별들이 총총 빛났다

검푸른 풀꽃 그림자가 절뚝이며 다가왔다

 

어둠에 가라앉던 들판이

꼴짐을 받아 내 머리 위로 옮긴다

 

코끝이 찡하다

 

 


 

 

이정애 시인(고령) / 어떤 나무 밑에서 풀이 자라지 않는 이유

 

 

공단에 가면 크고 작은 공장들이

채소밭 싹처럼 모여 있다

소파의 침목을 갈고

트랜스를 감고 주물을 부으며

밑바닥부터 뼈대를 세워 나간다

통나무의 말을 잘라

몇 번의 공정으로 다듬은 기타 줄에

노래를 매달아 준다

 

월말이면 임금을 맞추고

손 벌린 월세와 대출금 이자를 위해

문턱을 들락거린다

 

또,한 달을 버틴다

 

강남대로 불야성 거리

빈 젖을 빠는 가게가 늘어나고

불 꺼진 유리창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공룡 같은 입이 휩쓸고 간 자리에

냉냉한 바람이 분다

 

칭칭 묶인 사슬이 조여 오고

고개 숙인 채 숨만 쉬며 살 것인가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릴 것인가

 

억울한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

이제 노예처럼 살아야한다

 

큰 키와 넓은 품으로

햇볕을 독차지한 큰 나무 아래

흉작만 거듭하던 풀이 지쳐간다

 

그늘에 둥지를 틀 잡초는 많지 않다

 

 


 

이정애 시인(고령)

경북 고령 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시집 <길 위의 섬>. 광명문인협회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