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자 시인 / 파이프라인은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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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자 시인 / 파이프라인은 어디 있을까 ―간격이 사라지면
함양 가는 길에서 웃는 산을 만났다
멀리 앉아 있는 산 물결을 바라보다가 산이 먼저 웃으니 간격이 사라지고 간격이 사라져 손을 내밀었더니 천의 지느러미들이 달을 낳을 무렵 황어 떼가 돌아오는 화개천花開川에 내려오라는데
기척도 없이 찾아온 물고기 한 마리가 벌써 나를 읽는다 한참 동안 손바닥을 읽고 난 후 어깨 위로 올라와 등을 읽고 있다 마른 등을 훑고 난 후 사라지는 붉은 띠의 물고기들이 다시 몰려와 내 부끄러움 걷어 낼 때 늑골 속에서 열리는 파이프라인의 경전
수많은 알집에서 쏟아지는 달덩이 달덩어리의 알몸은 함박눈처럼 끌어안고 싶은 따뜻한 생의 봉분 그 봉분 속에서 넝쿨 올리면
차디찬 벽을 들어내고 왕래할 수 있다는데 꽃숭어리 숭어리 사이사이에 바람길 생기고 창문을 열면 모든 간격이 사라진다는데 나는 왜 산보다 먼저 웃지 못할까
-웹진 『시인광장』 2024년 5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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