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시인 / 유령 외 2편
|
지인 시인 / 유령
소리도 없이 붉은 담장 넘어와 와락, 달려드는 흰 드레스를 입은 라일락 향기 그에게 홀려 입맞춘 봄밤 멀리 하늘 어둠 속으로 우주선이 날아가고 있다 깜박이는 등불을 들고서
지인 시인 / 나도 여우가 되고 싶다
토요일 오후 해와 달이 뜨겁게 입맞추는 일산호수공원 푸르른 나무 그늘 아래서 내 남편의 팔장을 끼고 꼬리치는 여우를 보았네 작은 키에 통통하게 살찐 여우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남편은 참 행복해 보였네 두 짐승을 잡아 철창에 가두고 구경을 하려고 했는데 너무 행복해 보여 차마 잡을 수가 없었네 정발산 숲속으로 들어가는 그들을 그냥 놓아주기로 했네
하늘에는 뭉게구름 두둥실 오 행복한 날! 뜨거운 눈물 흐르고 지나온 생이 메아리치네 나는 생각해 보았네 내가 무엇을 잘못 살았나를
나도 여우가 되고 싶다.
-시집 『여우비』, 한국문연, 2004.
지인 시인 / 여우비
여우 같은 여름날 내 남편을 홀려 춤을 추며 간을 빼먹는 여우를 잡기로 했다 지금 관악산에서 둘이 김밥을 먹고 있으니 마음상하지 말고 (더 이상 상할 마음도 없겠지만) 비디오 카메라를 준비하고 기다리라고, 김국장 한테서 연락이 왔다. 오늘은 기어코 잡고야 말리라 피를 말리며 기다리는데 여부비가 쏟아지고 다시 연락이 왔다.
관악산에서 내려와 롯데백화점으로 들어간 여우의 꼬리를 놓쳐버렸다고 내일은 꼭 잡겠노라고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먹고 물처럼 그냥 흘러가라고 그러나 나는 어떻게 흘러가야 할지 몰라 여의나루에 나가 흘러가는 강물만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붉은 저녁 노을 속으로 강을 건너가는 여우와 내 남편이 보였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시집 『여우비』, 한국문연, 2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