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순 시인 / 우주쇼 외 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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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순 시인 / 우주쇼
우주쇼 본 적 있니?
봄날 들길에 나가 봐 여기 저기서 민들레꽃이 우주쇼를 하고 있지
그꽃 누가 피웠나? 우주가 피웠지, 우주의 햇볕, 바람 구름, 달빛이 들어 있지.
우주쇼를 마치면 민들레는 하얗게 하얗게 우주선을 날린대 조그맣고 까만 씨앗 하나씩을 태워
그 우주선에게 손 흔든 적 있어.
박두순 시인 / 동그라미를 받았다
저수지에 돌을 던졌더니 큰 저수지가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아팠나 봅니다
그래도 참고
동그랗게 동그랗게 동그라미를 만들어 내 앞에까지 보내 주었습니다.
박두순 시인 / 꽃에게
나는 사람들에게 네 칭찬을 자주 한다
신이 만든 것 중 가장 성공한 게 너라고.
널 아무리 헐뜯으려고 해도 아름다워 번번이 실패다
너 앞에선 절망이다 희망이다 아름다움 밖에 보지 못해서.
박두순 시인 / 서운함
지우개가 돼 그를 지웠다 바람에 날려 지웠다 구름에 얹어 지웠다 땀방울에 뭉개 지웠다 빗소리에 섞어 지웠다 파도에 밀어 넣어 지웠다 지워졌나 했는데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찌든 때 같았고 붉은 녹 같았고 아스팔트에 들러붙은 껌 같았다 떨어지는 꽃잎에도 묻고 낙엽으로 덮었는데도 그는 살아있었다.
박두순 시인 / 지움
살아간다는 건 쌓고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이 시를 쓰고 있는 볼펜심을 본다 이 순간도 심의 잉크가 줄어들고 있다 잉크를 지우고 있구나 살아간다는 것도 지우는 거구나
부드럽던 시절을 지우고 팽팽하던 살결을 지우고 순수했던 눈빛도 지우고 받는 세월을 써버리고 희망이란 것도 그만큼 지우고,
마침표 한 점을 얻는구나 점 하나 안에 뭉뚱그려지는구나.
-시집 <찬란한 스트레스를 가지고 싶다> (2014년 발행) 중에서
박두순 시인 / 물소리
물의 음성은 돌이 만든다
목소리 하나 갖고 싶은 돌
물 아래 엎드려 주고 물의 낭랑한 음성을 갖는다
박두순 시인 / 시국(時局)
너도 나에게 읽히지 않고
나도 너에게 읽히지 않는
서로 난해한 때이다
-어두운 두더지, 시선사 2022.
<동시> 박두순 시인 / 편지
편지 왔다, 꽃편지 들의 조그만 민들레꽃
가장 큰 들 편지지에
가장 작은 꽃 편지,
들길이 읽는데 내 마음이 다 젖었다.
<동시> 박두순 시인 / 두 산의 이야기
1. 가을 산
밥을 먹인다
찾아온 새들에게
찾아온 다람쥐들에게,
그리고 남은 밥을 먹는다 도토리 몇 알로.
2. 겨울 산
잠을 재운다
찾아온 개미들을
찾아온 곰들을,
그리고 맨 나중 잠든다 하얀 눈을 덮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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