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영 시인 / 오토튠 외 5편
|
벼리영 시인 / 오토튠*
가끔은 내가 아닌 소리를 내고 싶다 교묘히 포장이 된 삶이면 좀 어떠랴 그토록 저렸던 소리 비음 모아 버린다
건조한 파열음도 촉촉이 말랑하다 풍부한 성량으로 음치는 회복된다 사랑도 조절 가능한 오토튠이 있다면
설움은 자동으로 미소로 바뀌겠지 내 삶의 군더더기 사라져 버리겠지 숙명은 짊어질 거야 다시 설 수 있겠다
* 가수의 잘못된 음정을 자동으로 수정하는 플러그인
-《시조시학》 2023, 여름호
벼리영 시인 / 바람의 진술 사방은 벽뿐이다 출구 사라진 골목 인간 더미 속에서 더미(dummy)가 되어간다 지독한 폐소공포증이 도처에 깔린다 빛이 마비된 벽 속 휘청이는 도미노 골목의 아우성이 걸려있는 허공 모서리 허공은 굉음을 안고 숨소리를 삼킨다 가뿐 숨 밷어 내는 일탈을 꿈꾸는 일 직선이 곡선 되는 부정합의 어울림 축제는 미완의 날개 처참하게 구겨진
벼리영 시인 / 들꽃 여인
오지에 집을 짓고 샘물을 퍼 올렸지 고지를 향한 집념 마침내 깃발 꽂고 세속을 등져 버렸네 바람따라 산다 하네
피안이 따로 없어 여기가 천국이지 코로나 얼씬 못해 들꽃의 함박웃음 뜨락을 그리는 여인 한 폭의 꽃 앉았네
-제5회화시조집 <들꽃여인>표제시
벼리영 시인 / 담쟁이 벽화
너흰 벽을 기어오르지
바람처럼 맴돌았던 내 젊은 날의 물살을 보는 것 같아
초록이 붉은 시간을 만나면 성공이라 불러도 좋아 꿈이 낡았다면 수선이 필요하지 조금만 더 힘을 내렴
속 끓인 시간만큼 입속에선 흙냄새가 날 거야 지워진 발자국과 무너진 꿈은 장벽이 아니란다
성공은 잔잔한 물거품과도 같은 거야
길은 붉게 타올랐지만, 어느 날 그조차 물거품 된다 해도 낙담하지 말 것
어느 낡고 오래된 벽엔, 삭아 버린 뼈 내 기도 붉게 붉게 자라나 또 기워갈 테니
벼리영 시인 / 종이상자
1 단단히 채워진 몸 주춧돌 되었다가 헐거워 뒤뚱이던 벼랑 끝 아찔하다 생물을 날로 삼킨 날 속 터질까 두렵다
당신의 중독증이 내면에서 반짝이면 더께 한 내 몸에는 딱지 훈장 빛난다 주소가 채근하는 어둠 달빛 밟고 달린다
멋지게 포장되고 명품으로 채웠어도 끈적한 투명 띠로 겹겹이 봉인된 생 한 커플 벗기고 나면 불태워 없어질 몸
2 길가에 버려졌다 한숨 소리 들려오고 리어카 실려 가며 노숙마저 포개진다 각지고 모났던 이승, 접히고 접히었다
격동의 시간 견딘 끝은 또 다른 시작 노숙자 이불 되고 길냥이 요도 된다 내 몸은 죽어서 둥글어진 두루마리 화장지
-제4회화시조집<종이상자>표제시
벼리영 시인 / 새벽
밤사이 말랐던 눈 동살에 깜박이네
어제의 오늘에는 첫눈이 내렸는데 멍하니 허공만 쥔 채 피우지 못했네
오늘은 마당을 더 쓸어야 할 것 같아
잠들지 못한 나무 우수수 벗어내고 마지막 한 잎 마저도 미명속에 떨구네
하루를 깨우는 손 에너지 가득한 빛 정성껏 마름질해 소중히 입혀야 해
바톤을 넘겨 주면서 흰빛으로 물드네
-제4회화시조집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