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김명아 시인 / 점이지대漸移地帶 외 2편

파스칼바이런 2025. 8. 29. 17:27

김명아 시인 / 점이지대漸移地帶

 

 

머리 깎은 산봉우리 절벽 끝에 섰다

손발 떨어뜨리고 뿌리째 거꾸로 처박힌

옹이눈 꿰뚫고 발밑을 허물며

가장 밝은 안쪽을 보았을까

겹치고 혼재되어 맞물린 사이에서

바위틈을 비집고 힘줄기로 솟아난

 

초생수初生水 받아들고 비를 기다린다

 

꽃팔랑나비가 엉겅퀴 목을 꺾어

귀를 세우고 나무 사이를 살피는 동안

도둑잠을 자다 쓰다듬는

햇살에 눈을 뜬다 접힌 길을 펴며

새로운 다리가 되어 지켜나가는

귓바퀴를 돌아 실바람 사이를 다시 걷는다

 

점이지대에서 바람의 날개를 찾는다

 

 


 

 

김명아 시인 / 귀가 눈을 뜨고 따라간다

 

 

성주산 근처 아파트 인적 드문 곳

평상에 앉아 바람을 보고 있었다

다급한 목청소리와 떨림

산새들의 울부짖음에

귀가 눈을 뜨고 따라간다

 

평상 가까이 깃털 펼치지 못한

아기새가 겅중거리며 다가오고

지나가던 모자가 외친다

“뒤에 고양이가 숨어 있어요”

바람의 단면을 카메라에 담던 두 손

성큼 일어나 날갯죽지를 잡는다

뭇 새들 지저귀는 나뭇가지 위로 올려주자

젖은 날개는 바람의 옷을 입었을까

 

놓쳐버린 날개가 만져지고

나무를 바라보던 눈은 숲을 향하고

응시하며 주고받던 지저귐 날아오른다

화단으로 들어간 들고양이,

나뭇잎 되어 뒹굴고 뒹군다

 

 


 

 

김명아 시인 / 늦가을 지하철 풍경

 

 

알람 소리에 빠른 발걸음

지하철 경적소리 계단을 뛰어오른다

몰려드는 사람들 꼬리 길어지고

발 디딜 곳 없이 뒤섞이며 매달려 있다

 

궤도를 맴돌던 몸을 맡기고 들어서자

틈새마다 시선 둘 곳 없어

이어폰은 두 귀를 닫고

눈을 빼앗은 핸드폰이 바쁘고

졸음은 무표정한 얼굴들 감싸고 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흔들리며 흔들린다

선로 위를 빠르게 달린다

뒤통수만 훔쳐볼 수 없어

절뚝거리던 두 눈을 감았다

 

지하철, 길을 깨우며 역마다 숨을 토해내고

바퀴, 목적지를 향해 다시 불을 밝힌다

약속된 안내방송은 들리지 않았고

빈 좌석마다 반짝이는 유혹을 하고

시곗바늘은 어김없이 도착을 알렸다

 

쏟아져 나가고 들어오는 물결 위로

숨을 고르며 두 발에 힘을 준다

묵묵히 흩어지며 하늘을 보고

인파 속으로 내일의 삶을 잇는다

늦가을 저녁 길을 지우며 날아오르고

군중 속으로 수북히 쌓여간다

 

-웹진 『시인광장』 2025년 1월호 발표

 

 


 

김명아 시인

1961년 전남 여수 출생. 본명: 김명순. 2009년 《시와산문》으로 등단. 시집 『붉은 악보』, 『물 속의 잠』, 『담다·닮다』 출간. 제3회 한국녹색문학상 수상. 현재 한국현대시인협회, 광화문시인회, (사)시와산문문학회, (사)한국기독교문인협회 회원. 계간 『시와산문』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