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옥 시인(화가) / 꿈꾸는 달 외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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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옥 시인(화가) / 꿈꾸는 달
우리가 어느 길에서 다시 만났을 때 달의 이마를 바라보면 촛불을 들지 않아도 서로 환한 우리
혼자 서기 힘든 이들에게 쉽게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 찾아와 줄 때 벗어버린 날들이 깃털처럼 날아가고
겨울 저녁 당신을 부르는 내 노래의 마지막 소절이 흩어질 때 365개의 가파른 계단을 내려온 달빛이 생의 트로피를 어루만지면 꽃을 저버린 나뭇가지에 환하게 내리는 첫눈
-시집 『꽃 진 자리에 꽃은 피고』에서
김명옥 시인(화가) / 푹푹 쪄야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도 않지만 모든 사람이 나를 싫어하지도 않았지 가마솥처럼 푹푹 쪄야 연꽃향이 짙어지고 푹푹 쪄야 때에 절은 나도 사람냄새 날텐데
지구별 문법 아직도 서툴러 갇혀만 지냈던 영혼 더위에 못 이겨 잠금장치를 풀고 나올 때
배롱나무 꽃 붉게 달아오르고 덩달아 나도 붉게 달아오른다
김명옥 시인(화가) / 꿈꾸는 달
우리가 어느 길에서 다시 만날 때 달의 이마를 바라보면 촛불을 들지 않아도 서로 환하다 혼자 서기 힘든 이들에게 쉽게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 찾아와 줄 때 무례한 날들이 깃털처럼 날아간다 겨울 저녁 당신을 부르는 내 노래의 마지막 소절은 흩어지고 365개의 계단을 내려온 달빛 허물어진 불안의 등을 쓸어내리면 꽃이 떠난 나뭇가지에 환하게 내리는 첫눈
김명옥 시인(화가) / 토굴 가는 길
눈물 마른 뼈들을 끌고 멀미로 휘청이는 시린 발로 가는 길 알면 알수록 모르겠는 것들 보면 볼수록 보이는 않는 것들과 작별하고 뒤돌아서면 저만치 얼어붙은 불빛 아래 나무 물고기 끙끙 앓는 소리 쌓이는데 수북한 미련들을 아궁이에 던지고 눈사람 부둥켜안고 겨울잠이나 청해 볼까 늘 술래였던 나무들의 발자국에 새살이 돋을 때까지
김명옥 시인(화가) / 자화상
거울 속에서 아버지 걸어 나오신다 건천(乾川)이 이마를 흐르고 뺑코에 곱슬한 머리카락
수건으로 물기 닦고 다시 보니 깊은 눈가 토타운 입매 도드라진 광대 보고 싶은 엄마 얼굴
바짝 다가가서 한 겹 한 겹 벗겨내니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 유전자의 무덤이었네
통곡하는 그 무덤 달래줄 사람 없네
-시집 <꽃 진 자리에 꽃은 피고>
김명옥 시인(화가) / 메리골드 씨앗을 받으며
묶었던 머리카락 풀어 빗질하는 저녁 바람에 취한 시간의 비늘들이 말라가는데 그리 살지지 않았던 꽃밭 독을 숨겼거나 약을 숨겼거나 잡고 싶었던 손 놓쳐도 그뿐 어차피 모두 지고 말 뿐인데 누가 부러뜨렸을까 늙은 꽃대 어루만지며 충혈된 눈 비벼봐도 찾을 수 없는 서글픈 성감대 병든 개가 제 발을 하염없이 핥듯 제 상처 외에는 아무것도 아프지 않았었지 그래서 씨앗들은 이승을 훌훌 떠나 보는 것일까
깡마른 손으로 머리핀을 꽂고 나는 왜 꽃밭을 떠나지 못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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