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종 시인 / 잡채 외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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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종 시인 / 잡채
당면이 입원했을 때 병명은 전분의 과부하로 생긴 분리 불안증이었다
시금치나 당근이나 혹여 외롭다든가 쓸쓸하다든가를 넣어 센 불에 볶았다
추적추적 메타세콰이어 길이 어둠 속에 바스락거릴 때
죽음에 이르는 병을 덖어주었다
그것이 온 세상의 것을 위무해주지 않았던가?
시가 그렇고 절망이 그렇고 다시 불러보는 까닭 모를 외로움이 그러했다
몸을 빨래처럼 뒤틀어 채 털어내지 못한 계절까지 뒤집어 햇볕에 말렸다 곰팡이처럼 피어오르던 말년의 건선 같은 옹졸함도 딱정이 지어 떨어지고
그렇게 나는 완경(完經)에 다다를 수 있었다
김옥종 시인 / 홍어의 숫기
한때는 세 발의 기럭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가운데 빼고 두 발을 잘리는 아픔도 겪어야 했습니다
저의 고향은 흑산도입니다마는 품절의 아류를 많이 만들기도 했습니다 산천을 두고 칠레가 고향인 듯했고 심지어는 아프리카 쪽이 고향인 친구가 제 집에서 태어나기도 했습니다
제가 바람둥이라는 소문도 무성하지만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손암 선생께서 제가 교미할 때 가시를 박고 하는 것을 보고 '암놈은 식탐으로 망하고 숫놈은 색욕 때문에 죽었으니 색욕을 탐하는 자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라고 말하지만 오해는 없었으면 합니다
저는 성숙기에는 헛눈질을 하지 않습니다
저를 숙성시키는 힘은 항아리의 잔잔한 덖음 짚벼늘의 소소한 포옹으로 익어가는 저는 청순한 사내 새끼였어요
-시집 <잡채> (휴먼앤북스, 2022),
김옥종 시인 / 고추냉이 음식을 연애하듯 만들었다 보듬어서 좋았던 한 시절이 가고 서로의 체온에서 수맥을 느낄 때 토마토 주스를 갈아 마셨다 부추를 먹고 생굴을 먹고 영양제를 먹었다 환절기에 겹친 갱년기에는 연애를 음식 만들 듯 했다 차가운 곳에서 태어났으니 가장 뜨겁게 살아온 당신의 살 안쪽 인계선을 칼등으로 두드려 흘러내린 향기를 강판에 갈아 모두제비썰기해둔 인연을 간장에 적셔 먹었다 *모두제비썰기: 잔 칼집을 많이 내서 약간 크게 썰어 먹는 방법
김옥종 시인 / 난희에게 감기를 옮길까 봐 등 돌린 당신의 폐에서 순록 떼의 마른 발자국 소리 들립니다 옮겨 버리면 얼른 낫는다고 해서 입술로 덮습니다 차갑게 사랑하고 뜨겁게 헤어지고픈 그런 밤이었습니다
김옥종 시인 / 복섬
시래기 쫄복국의 가사리 고명처럼 내 오늘 끈적끈적 허니 물밑에서부터 엉키다가 더욱 부적절해지리라 속을 보듬고 냉기를 돌려보내면 온전히 벗은 몸으로 부끄러워하리라 만족시키지 못한 혀끝에 누워 내성을 가진 척 버텨 보아도 너의 치명적인 것은 독이 아니라 애정이었으니
-시집 ‘민어의 노래’, 휴먼앤북스, 2020.
김옥종 시인 / 명태 대그빡 전
울 큰 엄니 사리 물때에 눈이 가슴팍 까지 차오르던 날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꿩전을 부치셨다 생이 몇 바퀴 돌고서야 꼬순내 나던 꿩전이 명태 대그빡으로 만든 것임을 알았다 하릴없이 유년의 뒷그림자 녹슨 칼로 닦아내고 비계의 육즙 옆에 얼큰하게 드러눕던 밤 울 큰 엄니 꼬부랑 할매 되어 돌고 돌아오던 길가에서 기억을 꼬집고 가차이 서있는 보름달 아래에 콩대 타는 소리 튀어 오르고 휘어진 냉길 눈물샘으로 불어내며 명태 대그빡 대신 꿩 살을 다져 전을 부친다 대실 잔등에서 북서풍의 설향이 물안개처럼 흩날리고, 냉골인 구들장을 뎁혀 눅눅해진 시절을 올 곱게 하고 싶은 날에 버스 끊긴 정류장 앞은 달이 차고 넘쳐 새벽으로 번진 은하수 길 따라 명태 자리 별의 대그빡을 조사서 전을 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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