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일 시인 / 비 외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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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일 시인 / 비
밤에 문득 잠이 깨었을 때 촉촉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 누가 울고 있을까
꽃잎을 적시는 애틋한 마음 한량없는 자비
아무도 모르는 三更에 내 마음을 적시고 있었다
김건일 시인 / 개 이야기
그 개를 생각하니 미안하다 내 詩에 곧잘 등장하던 시골집의 그 개
가난하던 시골생활 십 수년 동안 해마다 두 배의 새끼를 낳아 조금은 생활에 보탬을 주던 그 개
논에 갈 때나 밭에 갈 때나 집을 지키라고 아무리 좇아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던 그 개
한번은 제 멋대로 새끼를 데리고 산에 마실을 갔다가 여우 잡는 올가미에 걸려 초주검이 되었던 그 개
서울로 이사올 때 그 개를 데려올 수 없었다 늙기도 늙었지만 자유롭게 뛰놀던 그 개를 모가지 묶어서 서울로 데려올 수 없었다
고향 시골집에서 처남과 같이 사는 그 개 서울에 눈오는 날 그 개가 보고 싶다
김건일 시인 / 달개비꽃
논에서 잡초로 뽑혀버리는 달개비꽃을 경동시장에서 보았다
머슴상에 말라붙은 보리밥풀 같은 남빛 달개비꽃 남빛의 달개비꽃이 경동시장에 약초로 팔려 와 있다
논을 맬 때 뽑아도 뽑아도 죽여도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달게비꽃
뿌리 채 뽑혀 닭장 위에 널어 햇볕에 말려도 소나기 한 줄기만 맞으면 새파랗게 다시 살아나는 남빛 달개비꽃
-시집 <꽃의 곁에서> (2006년 우와)
김건일 시인 / 뜸북새는 울지도 않았다
사람들 앞에서 도시의 뭇사람들 앞에서 뜸북새는 울지도 않았다
고향 논에서 점심나절과 저녁무렵을 뜸북 뜸북 울어 때를 알려주던 뜸북새가
때로 갓 심은 모를 엉망으로 밟아 농부의 애를 태우기도 하던 뜸북새
제기동 경동시장에 얼굴이 새카맣게 탄 농부에게 잡혀와 뜸북새는 울지도 않았다
사람들 앞에서 도시의 뭇사람들 앞에서 뜸북새는 울지도 않고 고향의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김건일 시인 / 봄풀꽃
술을 먹으니 온몸이 쑤신다
시를 쓰니 온 영혼이 쑤신다
사랑을 하니 온몸과 영혼이 쑤신다 달뜬다
봄이 되니 지구의 구석구석이 쑤시고 달뜬다
양지 바른 언덕에는 노오란 풀꽃이 솟고 노란 나비가 날아오른다
김건일 시인 / 아버지의 이빨
무우 깍두기를 사각사각 씹던 그 좋던 아버지의 이빨 쌀밥도 오물오물 씹는 종이 이빨 되었네
자식이야 십 남매 낳았지만 자식이야 시집 장가 다 보냈지만 어느 자식 하나 아버지 사정 알지 못하네 맛 좋은 저녁 식탁 마련해놓고 제 새끼 쫑긋한 이빨 들여다보고 신기해서 신기해서 뽀뽀를 하네
한번쯤 고향에 찾아온다면 어릴 적 달빛이 사립문 열 듯 한번쯤 고향에 찾아온다면 아버지 사정 알 수 있으리오만
묻노라 남대문이 열려 있더뇨? 숭숭히 뚫린 아버지의 이빨 사이로 세찬 겨울 바람만 들랑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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