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이은숙 시인 / 체온의 중심 외 2편

파스칼바이런 2025. 9. 2. 19:34

이은숙 시인 / 체온의 중심

 

 

기온이 바뀔 때마다

체온이 지배하는 내가 불편했다.

불안한 온도의 체류자가 된 기분

체감온도는 1도씩 낮았다

 

최고 기온 8° 현재 날씨 7℃ 실안개. 체감 6°

 

한 치 앞도 들리지 않는 기온을 측정하는 일

보이지 않지만, 보일 것 같은

탄산수 거품처럼 투명한 기포의 끊임없는 우그림

 

어쩌면 기온의 실체는 실안개일지도 모른다.

흐릿한 징후를 암시하는 노래,

살아 있는 말이었다가 목청이 되고 기침을 일으켜,

병증의 거리를 통제하고 사람들 움직임을 주시하는데

소문처럼 떠돌다 동트기 전 기록되고

글자 안에 잡힌 듯 다시 부유하다 어느새 중심(衆心)*이 된다.

중심(中心)을 측정하는 일은 단정할 수 없어

온통 꽉 차 있지만 비어있고 그대로 멈춘 듯, 선 적 없어서

곳곳으로 요란한 신호를 보내지만,

그 속에서 우린 외로웠고 결국은 혼자였다.

 

어릴 적 기온의 중심은 수평선일지도 모른다.

멀리 보이는 직선은 깨끗했고 발밑엔 때가 묻어 있어

잠들기 찝찝한 밤이면 그 끝을 떠올렸고

어느새 그곳, 서늘한 온도는 체온이고 나인 채로

깊은 잠에 빠지곤 했다.

 

수평선은 깨끗할 리 없고 기온의 중심을 찾는 일은

미결로 남았다

눈앞에 있지만 당도할 수 없는 그곳처럼 나를 잃은 채

잠에서 깨어나는 일을 반복할 때마다 뉴스 게시판엔

실마릴 찾기 위해 기후가 조작될 것이고

일기 좌표는 여론을 만들 것이다.

직선의 거리에서 정확히 점을 찍었다고,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았으며 확실하지 않지만

흐릿한 징후를 암시하는 노래처럼

목청 높여 기침하며 거리의 실체는 실안개

사람들은 단언할 것이다.

 

체감온도는 거짓말처럼 언제나 낮거나 높을 예정이다.

​​

*여러 사람의 마음

 

 


 

 

이은숙 시인 / X에 관한 식

 

 

값이 얼만지에 따라 참이 되기도 거짓이 되기도 하죠

미지수에 특정 값을 대입해요.

성립하려면 해解가 참이어야 합니다

 

1 시작 버튼-들어가는 페이지

겹낫표를 열고

ㄷ은 오늘의 제목에 『ㅁ』을 넣고 닫는다

작품 제목처럼 취급하기 시작했을 때, ‘ㅁ’은

‘우리의 행복이 시작되었어’라고 말했다

‘ㅁ’은 ‘ㄷ’이 만든 이야기로 들어가 만족한 듯 보였다.

 

언제부턴가 ‘ㅁ’을 화살괄호 안에 넣기 시작했을 때

‘ㅁ’은 프로그램이 인식 못 하는 깨진 문서로 ‘ㄷ’에 왔다.

 

고장 난 시계처럼

더는 오늘에 ㅁ을 불러올 수 없다는 걸 알지 못했다

 

2 테스트-결과 도출 에러

바이러스에 감염된 듯 어떤 프로그램은

서체를 바꾸고 문장부호를 고쳐도 인식할 수 없다

 

당신의 심리테스트 이벤트 페이지를 제작해 드립니다.

페이지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갈지 미리 안내해 드려요

단 마크업 언어를 이해해야 하죠.

태그에 딸려 오는 데이터 구조와 이름을 밝히세요.

첨단언어체계 링크와 함께

상대의 기분까지 스캔해 드립니다.

인쇄 테스트 이미지 보듯 기술적으로 표정을 살피죠

 

3 가면 증후군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것 하나 없다는 그녀는 그를 자신의 전부라 말했다.

열까지 세상. 그리고 외계

 

깨진 창이 풍경으로 들어갔다.

깨진 채로 아무렇지 않게 응시하는

풍경을 미워했다 공간이 날을 세웠다

위로 좁아질수록 공기의 흐름은 빨라졌다 속도와

압력의 발명에도 이론은 현실을 지배하지 못했다

속도를 낼수록 높이 떴다. 믿을 수 없는 가상의 풍경이었다.

 

4 그의 여름-풍경 너머

비가 내렸다 아스팔트 위로 흐르다 사라졌다

어떤 방식으로든 굳어 있는 것들은 스미거나 섞이지 않았다

수많은 이름이 흙을 닮지 않은 땅을 땅이라 이름했다

부를 때마다 메아리로 떠돌다 사라지고 마는 이름 위에서

빗물 위로 떠밀려 왔던 지렁이들이 누군가 뱉어놓은 껌과 함께 말라갔다

무엇이 껌이고 무엇이 지렁이였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섞일 수 없는 계절이 밟힌 것들의 허공으로 증발하고 있었다

푹푹 쪘던 강냉이도 돌멩이 표정으로 굳어 있었고 바람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식어버린 기억 몽우리, 박혀 있다 이따금 더부룩한 음식처럼

치받쳐 올라올 때가 있었다.

 

5 X에 관한 P식

P는 계절이 바뀌는 각도와 식을 계산했다

T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건 실제상황입니다.

당신은 거짓의 세계에 발을 들였어요

자가 발전하는 특징을 가졌죠*

진실만을 말하지 않겠습니다.’

아뇨 열을 세어요

뛰어도 될까요?

 

P식 피식 피이식

목소리 복제도 가능해요

소리의 겹, 발음이 겹으로 새고 있었다

결과는 늘 엉뚱하게 도출되었다

귀를 막아야 했다

엉뚱하게 흘러가는 것이 흥미진진한 것으로 읽혔다.

답을 찾으려 할수록 틀린 식에 말려들었다.

모든 곳곳에서 고장 난

컴퓨터 오답 경보음처럼 어떤 방식들이 소란騷亂퍼져 나갔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 중에서

 

 


 

 

이은숙 시인 / 페르마타

-늘임과 멈춤 사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향해 가는 순례길

 오선지 위 활보하는 음표들이 아침을 깨운다

 ‘소리 좀 내’

 음들은 호흡이 짧아

 모든 걸 내려놓은 듯 묵직한 저음은 원 박자보다 두세 마디 이상 늘어지지

 

 불규칙 홀수 마디

 

 ‘나 운동 좀 해’

 “자신감에 찬 이들은 금세 다리 이상이 와 중간에 길을 포기해야지 돼”

 관광객이 아닌 순례자의 핵심은 완주 한다는 목표를 내려놓는 것이라고 했다.

 오선지 위 소나기처럼 막 퍼붓듯 걷다가는 순례길에 채 스며보지 못하고 사라져

 그만, 그만인 듯 걸어야 순례길에서 악센트를 가져갈 수 있지

 a는 5회 b는 3회

 곡이 끝나도 악센트는 살아 있어

 즐거운 듯 급히 밀고 나가는 a. 느려지는 b의 만류 그리고 오선지의 작용

 센 마디, 여린 마디, 낱낱의 마디는 다른 무게를 가지지

 언제나 둘째 마디가 첫째 마디에 비해 무거운 이유는

 둘째 마디가 항상 악구를 일단락 짓기 때문이야.

 

 페르마타

 

 특정 음표 위에서 악곡의 감정을 생각하는 음의 길이를 본 적 있지

 어디에 위치하는지에 따라 여기서 끝. 혹은 두 배 세 배 늘어질 것.

 끝나지 않고 오래도록 늘어질 것 같던 음이 겹세로줄 위에서 그만 끝내라고, 멈추라고 하는데 그럴 땐 자클린의 첼로 음이 떠올라, 버리지 않기 위해 나를 버리는 것이 나을까?

 나를 버릴 수 없으면 어떻게 하지? 자클린의 첼로는 사람 목소리처럼 엉엉거리는데.

 곡이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박자의 운동을 잠시 멈추고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 기호는 없어

 a는 5회 b는 3회

 주의할 것, a가 서로 다른 마디에서 선율이 전혀 다름에도

 (첫째 마디에서 도약하고 둘째 마디에서 하행)

 특색을 가진 악센트와 음의 반복

 즐거운 듯 급히 밀고 나가는 우세한 선율 a, 그리고 만류하듯 느려지는 b

 오선지 위에서 낱낱의 마디는 서로 다른 무게를 끌고

 겹세로줄 위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웹진 『시인광장』 2024년 8월호 발표

 

 


 

이은숙 시인

2017년 계간 <시와산문> 신인문학상 으로 등단. 현재 계간 <시와산문> 편집장. 도서출판 다시문학 편집위원. 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