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희 시인 / 파리-몽마르뜨 식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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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희 시인 / 파리-몽마르뜨 식당에서
인생의 방랑자는 파리의 작은 방 카메라 오브스쿠라Camera obscura에서 감상해낸다 가는 바늘로 구멍 하나 뚫고 데카당스적 상상을 담배 연기에 실으며 뱉었던 미완의 독백이었을까 혀의 요구대로 미뢰의 맛봉오리를 알고 보니 신경계를 거쳐 뇌에 신호를 보내던 하나의 덩어리였다
그렇다, 고놈의 혀가 고놈의 뇌에 몇 개의 끈으로 조정되고 하나의 덩어리에 끌려 파리의 자코뱅(La Jacobine)에서 치즈가 멋지게 녹은 어니언스프를 먹던 또 다른 두 개의 시퀀스(sequence) 몽마르뜨 아니, 백건우와 윤정희가 머물렀던 그래서 더욱 낭만적인 전설을 생산해 내던 인간이 가진 위대한 시적 메타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터덜거리며 카르티에 라탱을 지나
이상의 오관(五關)문을 지나면 형이상학 문이 열리고 다섯 명의 아해들과 유행이 지난 포스트모더니즘이 아기자기한 춤을 시작하고 내내 어여쁜 금홍이를 향해 카메라가 돌아간다. 때늦은 레디 고우!
파리도 그랬지 바람 차가운 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보드카 한잔보다 더욱 위력을 발휘하는 어니언스프가 매력적이었지 에네가 근처 4층 숙소로 오르는 낡은 계단에서 삐거덕 소리만 나지 않았다면 몽마르뜨도 가깝고 센강도 그리 멀지 않다는 핑계도 속절없다
사실 점심을 먹기 위해 아니 어니언스프와 미뢰의 키스를 위해 퐁뇌프 역과 퐁뇌프 다리를 건너 루브르 박물관도 지나는 그 뒷길에 밤에 뿌려진 수컷들의 지릿한 냄새에서 발견해낸 씨간장의 추억과 동그란 시계 모양의 간판을 걸어놓은 La jacobine-자코뱅의 작은 사각형 유리창을 통해 풍경을 힐끔거리던 시각적 사치
다시 몽환적 스크린이 떠오르고 인생의 방랑자는 메뉴가 나타나는 내후각피질(entorhinal cortex)의 오로라가 격자세포를 넘어 장소와 맛의 기억을 스캔한다 그러나 이층집 닮은 밀푀유와 엑스프레소의 혼합으로 미각 전달 경로(Gustatory Pathway)가 고장나 적색등이 깜박이자 다시 인생의 방랑자는 병을 빠져나온 유령처럼 예르미타쥐 박물관을 여기저기를 헤매는 유령이 되어 레시피를 기억해낸다 대나무 숲 사이로 보였던 장독대 초승달은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하고
웹진 『시인광장』 2023년 8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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