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형기 시인 / 공중의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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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형기 시인 / 공중의 틈
눈을 뜨니 낮달이 떠 있다. 커피를 내려 공중에 앉아 어떤 그림을 그릴까, 카라카라 한 마리 공중을 찢는다. 투명한 힘줄이 끊어지는 소리, 강한 장력을 놓치며 벌어진다. 끊겨 나간 틈에서 주기율표 9족 원소가 흘러나온다. 가득 채운 코발트블루, 파랑 일렁이면 어느새 유영하는 고래, 가을 속 남쪽 하늘에 멈춘다. 마지막 한숨은 구름으로 웅크렸다. 낮달 사라진 공중, 엑스레이로 뒤진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잔뜩 숨어있다. 어떤 말들로 소리쳤던가, 공중은 소리 없는 기록자. 쳐다보지도 못하고 두려워했던 적 없었던가, 거꾸로 서도 흔들림 없는 공중. 산마루에 걸쳐있던 해가 끄트머리로 숨고 혁명의 노래가 공중을 채운다. 공중이 공중을 심판한다. 마젠타색 공중으로 뛰어든다. 걸을 때마다 피의 살들이 질퍽거린다. 꾸덕꾸덕 말라가는 공중, 검다. 노래와 말들이 점묘로 채워나간다. 단색화로 바뀌어 가는 공중, 말과 말이 부딪칠 때마다 생겨나는 틈, 별이라 부른다. 말없이 서 있던 것들이 귀신고래가 되고. 외쳤던 음절들은 별보다 적다. 아직도 촘촘히 박혀있는 노래, 울컥울컥 피어나는 별, 그러니까 부스러진 별, 빛을 잃고 박혀 있는.
-계간 『열린시학』 2022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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